김헌창의 난
IT 위키
더 많은 작업
김헌창의 난(金憲昌의 亂)은 822년(헌덕왕 14) 웅천주(지금의 공주) 도독 김헌창이 아버지 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이유로 일으켜 나라 이름을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 한 신라 하대의 반란이다.
신라 하대는 780년 혜공왕이 김지정의 반란 와중에 살해되고 김양상(선덕왕)이 즉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진골 귀족들이 왕위를 두고 다투어 150여 년 동안 20명의 왕이 바뀌었다. 선덕왕이 죽은 뒤 귀족 회의는 태종 무열왕의 후손인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했으나, 김경신이 먼저 왕궁에 들어가 원성왕으로 즉위했다. 김주원은 명주(강릉)로 물러났고, 이후 왕위는 원성왕의 후손이 이어 갔다.[1]
- 배경 - 김주원의 아들 김헌창은 807년 시중에 오를 만큼 실력자였으나, 헌덕왕(김언승)이 즉위한 뒤 견제를 받아 무진주·청주 도독을 거쳐 821년 웅천주 도독으로 밀려났다.
- 봉기(822년 3월) -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한 것을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켜 장안국을 세우고 연호를 경운이라 했다.
- 확산 - 무진주·완산주·청주·사벌주의 4개 주와 국원경·서원경·금관경의 장관, 여러 군현 수령이 따랐다. 지금의 충청·전라·경상도 일부에 걸친 큰 내란이었다.
- 진압 - 원성왕 후손인 균정·웅원·우징 등이 이끈 토벌군이 웅진성을 함락했고, 김헌창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여파 - 아들 김범문이 825년 고달산의 산적 수신과 함께 다시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되었다.
무열왕계 귀족은 이 난을 끝으로 왕위 다툼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중앙 귀족의 분열이 지방까지 번진 첫 대규모 반란으로, 신라 하대 왕권이 약해지고 지방 세력이 자라나는 흐름을 보여 준다. 이후 장보고가 왕위 다툼에 끼어들었고, 9세기 말에는 원종·애노의 난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나 후삼국 시대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