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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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 여왕(善德女王, ?~647, 재위 632~647)은 신라의 제27대 왕으로, 우리 역사 최초의 여왕이며 백제·고구려의 공세 속에 당과 가까이 지내고 첨성대·분황사·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다.
진평왕의 맏딸로 이름은 덕만이다.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성골 남자가 없어 화백 회의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634년 인평이라는 연호를 썼다. 재위 내내 고구려·백제의 공격이 이어졌고, 말년에 귀족의 반란 와중에 세상을 떠났다.[1]
- 대야성 함락(642) - 백제 의자왕에게 서쪽 40여 성을 빼앗기고, 장군 윤충이 낙동강 방면의 요충지 대야성(합천)을 함락했다. 한강 방면의 당항성도 고구려·백제의 공격을 받았다.
- 김춘추의 고구려 청병(642) - 딸과 사위를 대야성에서 잃은 김춘추가 고구려에 원군을 청했으나 실패했다.
- 방어 - 김유신을 압량주 군주로 삼아 백제를 막게 했다.
- 당에 구원 요청(643) - 당 태종은 "여왕이라 이웃 나라가 업신여긴다"며 당의 왕족을 왕으로 삼으라고 했다. 이 말이 신라 귀족 사이에 파문을 일으켰다.
- 분황사(634) - 분황사를 세웠다. 지금 남은 모전 석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았다.
- 자장 - 당에서 유학하던 자장을 불러들여(643) 대국통으로 삼고 불교로 왕의 권위를 높였다.
- 황룡사 9층 목탑(645) - 자장의 건의로 백제 장인 아비지를 데려와 세웠다. 9층은 주변 아홉 나라를 누른다는 뜻을 담았다. 고려 때 몽골 침입(1238)으로 불탔다.
- 첨성대 - 선덕 여왕 때 세운 천문 관측 시설로 전한다.
- 지기삼사 - 『삼국유사』는 여왕이 모란꽃 그림에 향기가 없음을 알아챈 일, 여근곡에 숨은 백제군을 알아낸 일,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안 일을 전한다.
상대등 비담과 염종 등이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며 반란을 일으켰다. 김춘추와 김유신이 이를 진압했으나 여왕은 그 와중에 세상을 떠났고, 사촌 동생 진덕 여왕이 뒤를 이었다. 이후 김춘추·김유신 세력이 실권을 쥐었다(→ 비담의 난).
| 사실 | 왕 |
|---|---|
| 첫 여왕, 첨성대·분황사·황룡사 9층 목탑, 비담·염종의 난 | 선덕 여왕 |
| 집사부 설치(651), 당 연호 사용, 나당 동맹 | 진덕 여왕 |
| 『삼대목』 편찬, 원종·애노의 난, 최치원의 시무 10여 조 | 진성 여왕 (→ 신라 하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