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삼국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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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삼국 통일(新羅의 三國統一, 642~676)은 신라가 당과 손잡고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를 무너뜨린 뒤, 670~676년 나당 전쟁에서 당군을 몰아내 대동강 이남의 땅을 하나로 묶은 과정이다.
6세기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하자 신라는 고구려·백제 양쪽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642년 대야성을 잃는 위기를 겪은 신라는 고구려와의 연합에 실패하자 당과 동맹을 맺었다. 나당 연합군이 두 나라를 차례로 무너뜨렸으나, 당이 옛 백제·고구려 땅은 물론 신라까지 지배하려 하자 신라는 고구려 부흥 세력과 손잡고 당과 7년 동안 싸워 이겼다.[1]
- 황산벌 전투(660) -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 5만이 황산벌(지금의 논산)에서 계백의 결사대 5천과 네 차례 싸운 끝에 이겼다. 당의 소정방은 13만 군대로 바닷길로 들어왔다.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항복해 백제가 멸망했다(태종 무열왕 때).
- 백제 부흥 운동 - 복신·도침·흑치상지가 주류성·임존성을 근거로 왜에 있던 왕자 부여풍을 왕으로 세웠다. 663년 왜의 지원군이 백강 전투에서 패하면서 끝났다.
- 고구려 멸망(668) - 연개소문이 죽은 뒤 아들들이 다투고 맏아들 남생이 당에 투항했다. 문무왕 때 나당 연합군이 평양성을 함락하고 보장왕이 항복했다.
- 고구려 부흥 운동 - 검모잠이 왕족 안승을 왕으로 세우고 한성(지금의 황해도 재령)을 근거로 싸웠다. 안승은 670년 신라로 내려왔고, 신라는 그를 금마저(지금의 익산)에 살게 하고 고구려왕으로, 674년에는 보덕왕으로 봉했다(보덕국). 684년 신문왕 때 보덕국 사람들의 반란이 진압된 뒤 보덕국은 없어졌다.
당은 백제 땅에 웅진 도독부(660), 신라에 계림 도독부(663), 평양에 안동 도호부(668)를 두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 했다.[2]
- 선제 공격(670) - 신라 설오유와 고구려 부흥군 고연무가 압록강을 건너 오골성을 쳤다.
- 백제 옛 땅 차지(671) - 웅진 도독부를 공격해 80여 성을 빼앗고 사비에 소부리주를 두었다.
- 석문 전투(672) - 황해도에서 크게 졌다. 김유신의 아들 원술이 살아 돌아온 싸움이다.
- 매소성 전투(675) - 이근행이 이끄는 당군 20만(기록상)을 매소성(지금의 연천)에서 물리치고 말 3만여 필을 얻었다.
- 기벌포 전투(676) - 금강 하구 기벌포에서 설인귀의 수군을 무찔렀다. 당은 안동 도호부를 요동으로 옮겼고, 전쟁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