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대토벌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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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대토벌 작전(南韓大討伐作戰, 1909)은 1909년 9월부터 10월까지 일본군이 당시 의병 활동이 가장 활발하던 전라남북도의 의병을 없애려고 벌인 대규모 진압 작전으로, 이 작전 뒤 국내 의병은 크게 꺾이고 남은 세력은 만주·연해주로 옮겨 독립군으로 이어졌다.
작전은 1909년 9월 1일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40일 계획이었으나 10월 말까지 늘어나 약 두 달 동안 이어졌다. 일본은 임시 파견대 2개 연대와 헌병·경찰을 투입하고, 바다에는 수뢰정을 배치해 섬으로 달아나는 길을 막았다.[2]
- 1기 - 남원을 기점으로 고흥·광주·영광에 이르는 지대에 포위망을 치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훑어 내려갔다.
- 2기 - 남은 의병을 전라남도 서남쪽 반도 끝으로 몰아넣었다.
- 3기 - 서남 해안의 섬까지 뒤졌다.
- 수색 방식 - 마을을 에워싸고 면장·동장에게 받은 남자 명부와 대조해 의심스러운 사람을 붙잡았다. 한 번 뒤진 마을을 불시에 다시 뒤지는 이른바 '교반적 방법'으로 숨은 의병까지 찾아냈다.
- 폭도 도로 - 붙잡은 의병을 해남에서 광양·하동에 이르는 도로 공사에 강제로 동원했다. 일본은 이 길을 '폭도 도로'라 불렀다.
- 피해 수치 - 『신편 한국사』는 의병장 103명과 의병 4,138명이 붙잡히거나 죽거나 자수했다고 쓴다.[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작전 전 기간 의병 측 사망 17,779명·부상 376명·포로 2,139명이라는 수치를 들어, 두 자료의 숫자가 크게 다르다.[1]
- 의병장 - 심남일·안규홍·임창모·강무경 등이 이때 붙잡히거나 죽었고, 전해산은 12월에 붙잡혔다.
- 결과 - 전라남도의 의병 활동은 1909년 말 사실상 끝났다. 근거지를 잃은 의병은 만주·연해주로 옮겨 독립군 기지 건설과 무장 투쟁을 준비했다. 일본은 이듬해 한국을 병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