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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신론(讀史新論, 1908)은 신채호가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한 한국 고대사 사론으로, 민족을 역사의 주체로 세워 단군·부여·고구려 중심으로 고대사를 다시 쓴 근대 민족주의 사학의 첫 저술이다.

신채호는 국권이 기울던 1908년 8월 27일부터 12월 13일까지 50회에 걸쳐 『대한매일신보』에 이 글을 실었다. 연재된 글은 서론과 단군에서 발해까지를 다룬 상세(上世) 부분으로 이루어진 미완성 글이었다. 신채호가 1910년 망명한 뒤 최남선의 잡지 『소년』 1910년 8월호에 「국사사론」이라는 제목으로 일부 표현이 바뀌거나 빠진 채 다시 실렸다.[1][2]

  • 역사관 - "국가의 역사는 민족의 흥망성쇠를 서술하는 것"이라 하여, 왕조 중심의 유교 사관에서 벗어나 민족을 역사 서술의 단위로 삼았다.
  • 고대사 체계 - 단군에서 기자·위만으로, 또는 기자에서 마한·삼한으로 정통이 이어진다는 기존 체계를 부정하고, 부여족을 고대의 주 종족으로 보아 단군·부여·고구려 중심으로 서술했다. 반도 중심이 아니라 만주를 중심 무대로 보았다.
  • 비판 - 당의 힘을 빌린 삼국 통일과 김유신·김춘추를 비판적으로 평가했고, 한국사의 무대를 한반도로 좁힌 김부식의 역사관도 비판했다.
  • 목적 - 민족 의식과 국가 의식을 일깨워 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서 국권을 지키게 하려는 애국 계몽 운동의 하나였다.[2]

한국 근대 역사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민족주의 사학이 식민 사관에 대응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애국 계몽 운동의 하나로 성립했음을 보여 준다. 신채호는 뒤에 이 구상을 넓혀 『조선상고사』를 썼다.

신채호의 역사 저술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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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 발표 핵심
독사신론 1908, 『대한매일신보』 민족 중심 고대사, 부여족 중심
『조선사연구초』 1925 연재, 1929 출판 묘청의 난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으로 평가
『조선상고사』 1931 연재, 1948 출판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
  1. ↑ 독사신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2.0 2.1 독사신론, 교과서 용어 해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