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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9성(東北九城)은 1107년(예종 2)부터 이듬해까지 윤관이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을 몰아낸 뒤 고려 동북쪽 변경에 쌓은 아홉 성으로, 1109년 여진에 돌려주었다.

1107년 윤관이 원수, 오연총이 부원수가 되어 17만 대군으로 여진을 쳤다. 고려군은 여진의 근거지를 무너뜨린 뒤 그해 12월부터 영주·웅주·복주·길주에 성을 쌓고, 이듬해 함주와 공험진, 그리고 의주·통태진·평융진에 성을 더 쌓아 9성을 갖추었다. 1108년에는 공험진에 비를 세워 고려의 경계로 삼았다(척경입비).[1][2]

  • 여진은 9성을 되찾으려고 끈질기게 공격하면서, 돌려주면 대대로 조공하고 침범하지 않겠다고 청했다.
  • 성과 성 사이가 멀어 지키기 어려웠고, 오랜 전쟁으로 군사와 물자의 부담이 컸다.
  • 1109년(예종 4) 7월 고려는 9성을 돌려주고 군사를 거두었다. 윤관은 반대파의 탄핵을 받았다.

9성을 둘러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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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의 이름 - 쌓을 때의 9성과 돌려줄 때의 9성 이름이 조금 다르다. 돌려줄 때 목록에는 의주·공험진·평융진이 빠지고 숭녕진·진양진·선화진이 들어 있다. 사료에 성이 모두 12개쯤 보여 '9'는 많다는 뜻이라는 견해도 있다.
  • 위치 - 함흥 평야 일대로 보는 견해, 두만강 너머까지 보는 견해 등이 맞선다.

세력을 키운 여진은 1115년 금을 세우고 1125년 요를 멸망시킨 뒤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했다. 1126년 이자겸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자겸의 난).

  1. ↑ 구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9성, 우리역사넷(교과서 용어 해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