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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겸의 난(李資謙의 亂, 1126)은 고려 인종 때 왕실의 외척 이자겸이 척준경의 군사력을 동원해 궁궐을 불태우고 권력을 독차지한 사건으로, 문벌 귀족 사회가 흔들리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이자겸의 가문인 인주 이씨(경원 이씨)는 문종 이후 80여 년 동안 왕실과 거듭 혼인을 맺은 대표적인 문벌 귀족이었다. 이자겸은 딸을 예종의 왕비로 들였고, 1122년 외손자인 인종이 14세로 즉위하자 실권을 잡았다. 그 뒤 셋째·넷째 딸까지 인종에게 시집보내 왕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이 되었다. 반대파를 제거하고 요직을 일족으로 채웠으며, 스스로 '지군국사'라 칭하고 생일을 '인수절'이라 부르게 했다.[1]

  • 인종 측근의 거사 - 1126년 2월 내시지후 김찬, 내시녹사 안보린이 동지추밀원사 지녹연, 상장군 최탁 등과 함께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고 군사를 일으켰다.
  • 척준경의 반격 - 이자겸과 사돈 관계인 척준경이 군사를 이끌고 궁궐을 공격하고 불을 질렀다. 궁궐이 거의 다 타고 거사에 가담한 이들은 죽거나 유배되었다. 이자겸은 인종을 자기 집에 가두다시피 하고 정치를 마음대로 했다.
  • 금에 대한 사대 - 같은 해 금이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하자, 많은 신하가 반대했으나 이자겸은 정권 유지를 위해 이를 받아들였다.
  • 진압 - 인종은 최사전의 계책에 따라 이자겸과 척준경을 갈라놓았다. 두 집안의 노비들 사이 다툼으로 사이가 벌어지자 척준경이 왕의 편에 서서 이자겸을 붙잡았다. 이자겸은 영광으로 유배되어 그해 12월 죽었다. 척준경도 이듬해 정지상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
  • 인주 이씨의 외척 세력은 몰락했으나, 궁궐이 불타고 왕의 권위가 크게 떨어졌다.
  • 김부식 등 개경 귀족과 정지상·묘청 등 서경 세력이 새로 떠올라 대립했고, 이는 1135년 묘청의 난으로 이어졌다.
  • 문벌 귀족 사회의 모순이 커져 1170년 무신 정변의 바탕이 되었다.

고려 중기 정변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사건
김찬·안보린의 제거 시도, 척준경이 궁궐을 불태움, 금에 사대 이자겸의 난(1126)
서경 천도·칭제 건원·금국 정벌 주장, 국호 대위·연호 천개, 김부식이 진압 묘청의 난(1135)
보현원에서 문신 살해, 의종 폐위 무신 정변(1170)
교정도감·정방 설치 최씨 무신 정권
목종 폐위, 현종 옹립 강조의 정변(1009) (→ 현종 (고려))
  1. ↑ 이자겸의 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