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윤관(尹瓘, ?~1111)은 고려 전기의 문신이자 장군으로, 숙종 때 별무반 조직을 건의하고 예종 때 여진을 정벌해 동북 9성을 쌓았다.

본관은 파평이다.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해 문신으로 벼슬을 시작했다. 11세기 말 만주 동쪽의 여진 완옌부가 세력을 키우며 고려 동북 국경을 위협하자, 1104년(숙종 9) 동북면 행영병마도통으로 여진 정벌에 나섰으나 기병 중심인 여진에 패했다.[1]

윤관은 패배의 원인이 기병에 대적할 수 없었던 데 있다고 보고 숙종에게 새 군사 조직을 건의했다. 이에 1104년 임시 군사 조직인 별무반을 만들었다.[2]

  • 신기군 - 기병. 말을 가진 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편성했다.
  • 신보군 - 보병. 20세 이상 과거에 응시하지 않은 남자를 편성했다.
  • 항마군 - 승려로 이루어진 부대.

별무반은 여진 정벌이 끝난 뒤 해체된 것으로 본다.

  • 정벌 - 1107년(예종 2) 윤관이 원수, 오연총이 부원수가 되어 17만 대군을 이끌고 여진을 쳤다. 여진의 근거지를 무너뜨리고 함주·영주·웅주·복주·길주·공험진 등에 9성을 쌓았다. 9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함흥평야 일대로 보는 견해와 두만강 너머까지로 보는 견해가 있다.
  • 척경입비 - 9성을 쌓은 뒤 1108년(예종 3) 공험진에 비석을 세워 고려의 경계로 삼았다. 이 일을 '척경입비'(경계를 개척하고 비를 세움)라 하며, 조선 후기에 그린 「척경입비도」가 전한다.
  • 반환 - 여진이 계속 9성을 공격하며 돌려주면 영원히 조공하겠다고 애걸했고, 9성은 지키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었다. 결국 1109년 9성을 여진에 돌려주었다. 윤관은 반대파의 탄핵으로 관직을 잃었다가 복직했으나 곧 죽었다.
  • 그 뒤 - 세력을 키운 여진은 1115년 금을 세우고 1125년 거란(요)을 멸망시켰다. 금이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하자 1126년 이자겸이 이를 받아들였다. → 이자겸의 난

다른 대외 항쟁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인물·시기
별무반 조직 건의, 동북 9성 축조 윤관(숙종·예종)
소손녕과 외교 담판, 강동 6주 획득 서희(성종) (→ 고려 거란 전쟁)
귀주 대첩 강감찬(현종) (→ 고려 거란 전쟁)
처인성 전투에서 살리타 사살 김윤후(고종) (→ 고려 몽골 전쟁)
4군 6진 개척 조선 세종 때 최윤덕·김종서 (→ 세종)
  1. ↑ 윤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별무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