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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분당(東西分黨)은 1575년(선조 8) 이조 전랑 자리를 둘러싼 김효원과 심의겸의 대립을 계기로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진 일로, 조선 붕당 정치의 시작이다.

선조가 즉위한 뒤 사화로 밀려났던 사림이 중앙 정계를 차지했다. 그러나 척신 정치의 잔재를 얼마나 철저히 청산할지를 두고 선배 사림과 후배 사림의 생각이 달랐다. 갈등은 이조 전랑 자리에서 터졌다. 이조 전랑은 품계는 낮아도 삼사 관리의 추천권과 자기 후임을 천거하는 권한(자대권)을 가져 권력의 향방을 좌우하는 자리였다.[1][2]

  • 첫 충돌 - 김효원이 전랑에 천거되자, 명종비의 동생인 외척 심의겸이 김효원이 윤원형의 집에 드나들었다며 반대했다.
  • 두 번째 충돌 - 김효원이 전랑을 마칠 무렵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후임으로 거론되자, 이번에는 김효원이 외척에게 전랑을 맡길 수 없다며 막았다.
  • 분당 - 관리와 사림이 두 사람을 따라 나뉘었다. 김효원의 집이 도성 동쪽 낙산 아래 건천동에, 심의겸의 집이 서쪽 정동에 있어 동인·서인이라 불렀다.
  • 이이의 조정 - 이이가 두 사람을 각각 경흥 부사와 개성 유수로 내보내 화해시키려 했으나 분열은 수습되지 않았다.

두 붕당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구분 동인 서인
중심 인물 김효원 심의겸
구성 척신 정치 청산에 적극적인 신진 사림 척신 정치에 비교적 너그러운 기성 사림
학통 이황·조식의 문인이 많음 이이·성혼의 문인이 많음
이후 1589년 기축옥사·1591년 건저의 사건 뒤 남인과 북인으로 나뉨 숙종 때 노론과 소론으로 나뉨
  1. ↑ 동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사림의 분열과 붕당의 출현, 『신편 한국사』 30,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