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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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李滉, 1501~1570)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호는 퇴계이며, 『성학십도』를 지어 선조에게 바치고 예안 향약을 만들었으며 이기 이원론을 바탕으로 영남학파를 이루었다.
경상도 예안(지금의 안동) 사람이다. 문과에 급제해 벼슬했으나 1545년 을사사화 이후 대부분의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 퇴계에 물러나 학문과 제자 교육에 힘썼다. 단양 군수·풍기 군수, 성균관 대사성, 대제학 등을 지냈다. 1560년 도산서당을 짓고 제자를 길렀으며, 그가 죽은 뒤 이곳에 도산서원이 세워졌다. 유성룡·김성일·정구 등 많은 제자가 영남학파를 이루었고, 그의 학문은 일본 성리학에도 영향을 주었다.[1]
- 소수 서원 사액 - 풍기 군수일 때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에 국왕의 편액과 서적·토지를 내려 달라고 청해, 1550년 최초의 사액 서원인 소수 서원이 되었다.
- 예안 향약 - 고향 예안에서 향약을 만들어 향촌 사회를 유교 윤리로 교화하려 했다.
- 『주자서절요』 - 주희의 편지글 가운데 요긴한 것을 가려 엮었다.
- 사단 칠정 논쟁 - 기대승과 8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단과 칠정의 관계를 논했다. 이(理)가 스스로 움직인다는 이기호발설을 내세워 이를 중시했다.
- 『성학십도』 - 1568년 어린 선조에게 성리학의 요점을 열 개의 그림과 설명으로 정리해 바쳤다. 같은 해 정치 개혁 방안을 담은 「무진육조소」도 올렸다.
- 「도산십이곡」 - 도산의 자연과 학문의 즐거움을 노래한 연시조이다.
| 구분 | 이황 | 이이 |
|---|---|---|
| 호 | 퇴계 | 율곡 |
| 군주에게 바친 책 | 『성학십도』(선조) | 『성학집요』(선조) |
| 향약 | 예안 향약 | 서원 향약·해주 향약 |
| 학설 | 이를 중시, 이기호발설 | 기를 중시, 기발이승일도설 |
| 그 밖의 저술 | 『주자서절요』, 「도산십이곡」 | 『동호문답』, 『격몽요결』, 「만언봉사」 |
| 학파 | 영남학파(남인) | 기호학파(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