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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 사건(東一紡織事件, 1976~1978)은 유신 체제 아래 인천 동일방직의 여성 노동자들이 민주 노동조합을 지키려다 회사와 경찰, 어용 노조의 탄압을 받은 사건으로, 1978년 대의원 선거 때 회사 측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 조합원들에게 똥물을 뿌린 일로 널리 알려졌다.

동일방직은 인천 만석동의 큰 방직 공장으로, 노동자 약 1,300명 가운데 1,000명 넘게가 여성이었다. 1972년 5월 노동자들이 회사 편의 집행부를 물리치고 주길자를 지부장으로 뽑아, 전국 섬유 노조에서 처음으로 여성 지부장이 나왔다. 이후 회사는 노조원을 상대로 협박·부서 이동·사표 강요·부당 해고를 이어 갔다.[1][2]

회사는 지부장과 총무를 경찰에 미리 연행시킨 채 자기편 대의원만으로 대의원 대회를 열어 노조를 빼앗으려 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노조 사무실에서 농성하자 경찰이 강제 해산에 나섰고, 노동자들은 옷을 벗고 맞서다 72명이 연행되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 일을 1976년 7월 23~25일로, 우리역사넷 해설은 1975년 7월 25일로 적는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 공작을 중앙정보부가 지휘했다고 쓴다.[1][2]

똥물 사건과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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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8년 2월 21일 - 새 대의원을 뽑는 날 새벽, 회사 측 남성들이 방화수통에 담은 똥물을 노조 사무실에 퍼붓고 여성 조합원들에게 뿌리고 먹이기까지 했다. 투표함 40여 개가 부서지고 50여 명이 다쳤으나 현장의 경찰은 막지 않았다. 전국 섬유 노조는 오히려 동일방직 노조 집행부를 제명했다.
  • 항의 - 3월 10일 근로자의 날 행사장(장충 체육관)에서 노동자들이 기습 시위를 벌이는 등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 해고와 블랙리스트 - 회사는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했다. 해고 날짜와 인원을 우리역사넷 해설은 4월 1일 126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124명으로 적는다. 섬유 노조 위원장은 해고자의 이름과 주민 등록 번호를 전국 사업장에 돌려 이들을 채용하지 말라고 했다(블랙리스트).[2]

유신 체제 아래 1970년대 여성 노동자 중심 민주 노조 운동을 대표하는 사건이다. 2001년 당시 중앙정보부 노사 담당자의 양심선언으로 탄압이 정보기관의 기획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1]

1970년대 노동 운동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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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때
평화 시장 노동자 전태일 분신 1970
동일방직 사건 (나체 시위, 똥물 사건) 1976~1978
YH 무역 사건 (신민당사 농성) 1979
부천 경찰서 성 고문 사건 (→ 부천 경찰서 성 고문 사건) 1986 (전두환 정부)
  1. ↑ 1.0 1.1 1.2 동일방직사건 - "똥을 먹고 살 순 없다", 오픈아카이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26-10-19 확인.
  2. ↑ 2.0 2.1 2.2 동일 방직 노동자들의 노동운동 탄압에 대한 호소, 우리역사넷(사료로 본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