묄렌도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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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öllendorff, 1847~1901)는 임오군란 뒤 청의 이홍장이 추천해 조선 정부의 외교 고문이 된 독일인으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협판과 해관 총세무사를 맡아 해관을 세웠고 갑신정변 뒤 러시아와의 밀약을 추진하다 물러났다. 한자 이름은 목인덕(穆麟德)이다.

톈진 주재 독일 영사를 지낸 그는 1882년 이홍장의 주선으로 조선과 고용 계약을 맺고 그해 말 청의 마젠창과 함께 서울에 왔다.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협판(외무 협판)에 임명되어 외교·통상 업무를 맡았다. 고종은 그를 가까이하여 전동에 집을 내렸고, 그는 조선 관복을 입고 다른 관리들과 함께 조회에 나가 백성들은 그를 '목 참판'이라 불렀다.[1]
갑신정변(1884) 뒤 고종은 청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러시아에 기대려 했다. 묄렌도르프는 1885년 초 주일 러시아 공사관 서기관 스페예르와, 이어 갑신정변 사과 사절로 일본에 간 길에 주일 러시아 공사와 만나 러시아 군사 교관의 파견과 조선 보호를 청하고, 그 대가로 영흥만 같은 부동항을 빌려주는 방안을 협의했다(제1차 조러 밀약). 앞서 1884년 조러 수호 통상 조약을 주선한 일까지 겹쳐 그는 톈진으로 불려가 이홍장에게 책임을 추궁당했고, 이홍장은 그를 해임한 뒤 미국인 메릴을 총세무사로, 데니를 외교 고문으로 앉혔다.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한 영국은 1885년 거문도를 점령했다.[4][5]
| 인물 | 나라 | 활동 |
|---|---|---|
| 묄렌도르프 | 독일 | 외무 협판·총세무사, 해관 창설, 조러 밀약 |
| 마젠창 | 청 | 임오군란 뒤 내정 고문 |
| 스트리플링 | 영국 | 인천 해관의 첫 세무사 |
| 메릴 | 미국 | 묄렌도르프 뒤의 해관 총세무사 |
| 데니 | 미국 | 묄렌도르프 뒤의 외교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