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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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박해(丙寅迫害)는 1866년(고종 3) 흥선 대원군이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 선교사 9명과 수많은 조선인 신자를 처형한 사건으로, 병인사옥이라고도 하며 병인양요의 원인이 되었다.
- 선교사 처형 - 조선에 있던 프랑스 선교사 12명 가운데 베르뇌 주교 등은 서울 노량 사장(새남터)에서, 다블뤼 주교 등 3명은 충청도 보령의 수영에서 처형되어 모두 9명이 죽었다.
- 신자 처형 - 남종삼·홍봉주 등이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었고, 박해는 몇 해 동안 이어졌다. 천주교회 쪽 자료는 3년 동안 약 8,000명이 희생되었다고 본다. 『한국통사』에 나오는 더 큰 수치는 과장으로 여겨진다.
- 절두산 - 서울 양화진 잠두봉에서도 많은 신자가 처형되어 뒤에 절두산이라 불렸다.
| 사건 | 때 | 내용 |
|---|---|---|
| 신해박해 | 1791년 정조 | 윤지충이 신주를 불사른 일(진산 사건) |
| 신유박해 | 1801년 순조 | 이승훈·정약종 처형, 정약용 유배, 황사영 백서 사건 |
| 기해박해 | 1839년 헌종 | 프랑스 신부 3명 처형 |
| 병인박해 | 1866년 고종 | 프랑스 신부 9명 처형, 병인양요의 원인 |
- ↑ 천주교 탄압: 병인사옥, 『신편 한국사』 37,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
- ↑ 병인양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