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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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박해(辛酉迫害, 1801)는 순조 즉위 직후 정순 왕후의 수렴청정 아래 벽파가 남인 시파 세력을 꺾으려고 천주교도를 대대적으로 처형한 사건으로, 황사영 백서 사건이 겹쳐 탄압이 더 커졌다.
- 박해령 - 1801년 1월(음력) 대왕대비가 천주교를 금하는 명을 내리고, 다섯 집을 한 통으로 묶는 오가작통법으로 교도를 찾아냈다.
- 처형과 유배 - 이승훈·정약종 등 초기 교회 지도자와 청에서 들어온 주문모 신부가 처형되고, 300여 명이 순교했다.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지었다. 천주교를 믿은 왕족(은언군의 부인과 며느리)도 사사되었다.
- 황사영 백서 사건 - 정약용의 조카사위 황사영이 충청도 제천 배론의 토굴에 숨어, 박해의 실상을 알리고 서양 군함과 군대를 보내 신앙의 자유를 얻게 해 달라는 내용을 비단에 적어 베이징의 주교에게 보내려다 발각되었다. 황사영은 처형되었고, 천주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종교로 몰려 탄압이 더 심해졌다.
- 남인 시파 세력이 크게 꺾였고, 이후 안동 김씨 중심의 세도 정치로 이어졌다.
- 지식인 중심이던 천주교회는 큰 타격을 받았으나, 살아남은 교도들이 산간으로 숨어들어 신앙이 오히려 서민층으로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