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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초(史草)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사관이 왕의 말과 행동, 나랏일의 잘잘못을 날마다 기록한 원고로, 실록을 편찬하는 가장 기본 자료였다.

춘추관의 관직을 겸한 사관, 특히 예문관의 전임 사관(한림)은 왕 곁에서 왕과 신하가 나눈 말과 정사를 그대로 적었다. 왕이 죽으면 실록청을 열어 사초와 시정기, 『승정원일기』 등을 모아 실록을 편찬했다. 사관이 마음껏 쓸 수 있도록 왕도 사초를 볼 수 없게 했고, 사초의 내용을 누설하거나 고치는 것을 엄하게 처벌했다.[1][2]

  • 입시 사초 - 사관이 왕을 모시는 자리에서 그때그때 적은 기록이다.
  • 시정기 - 춘추관이 각 관청의 문서와 사초를 모아 해마다 엮은 공적 기록이다.
  • 가장 사초 - 사관이 집에 따로 간직한 사초이다. 인물에 대한 평가와 비밀스러운 일까지 적었고, 실록을 편찬할 때 실록청에 냈다.

실록이 완성되면 내용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사초와 시정기, 실록 초고를 물에 불려 글씨를 알아볼 수 없게 없앴다. 이를 세초(洗草)라 한다.

사초와 무오사화

편집 원본 편집

1498년(연산군 4) 『성종실록』을 편찬할 때 실록청 당상 이극돈은 사관 김일손의 사초에 자신의 비행이 적힌 것을 보고 삭제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이극돈과 유자광 등은 그 사초에 실린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세조의 즉위를 비난한 글이라며 연산군에게 알렸고, 김일손 등이 처형되고 김종직은 부관참시되었다(무오사화). 이 일 뒤로 가장 사초를 낼 때 작성자의 이름을 적게 했다.

  1. ↑ 사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무오사화, 『신편 한국사』 28,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