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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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承政院)은 조선 시대에 왕명의 출납을 맡은 국왕의 비서 기관으로, 은대(銀臺)·후원(喉院)·정원(政院)이라고도 불렸다.
조선 건국 초에는 중추원 안의 승지방이 왕명 출납을 맡았다. 1400년(정종 2) 중추원의 기능을 나누면서 승지방을 승정원으로 독립시켰다. 이듬해 승추부에 딸려 대언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405년 다시 승정원이 되었다. 세종 때 갖추어진 직제가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다. '후원'은 왕의 목구멍과 같은 곳이라는 뜻이다.[1]
- 6승지 - 도승지·좌승지·우승지·좌부승지·우부승지·동부승지 각 1명으로 모두 정3품 당상관이다. 6조의 일을 하나씩 나누어 맡았다(도승지는 이조, 좌승지는 호조 등).
- 주서 - 정7품 2명으로, 왕과 신하의 대화와 승정원의 업무를 기록했다.
- 왕명 출납 - 왕의 명령을 관청과 관원에게 내려 보내고, 신하들의 상소와 보고를 왕에게 올렸다.
- 유지(有旨) - 승지가 왕명을 받아 그 내용을 직접 쓰고 자신의 직함과 성을 적어 서명한 뒤 관원에게 보낸 문서이다.
- 조보(朝報) - 승정원이 왕의 명령, 상소와 비답, 관리 인사 같은 조정 소식을 골라 조보소에 내리면 각 관청의 기별서리가 베껴 가 돌린 관보이다. 기별이라고도 했으며 1895년 『관보』로 바뀌었다.
- 세조 때 원로 대신이 승정원에서 정무를 보는 원상제가 운영되었으나 1476년(성종 7) 폐지되었다.
승정원이 날마다 왕명 출납과 행정 사무, 의례 등을 적은 일기이다. 임진왜란 등으로 앞부분이 불타 인조 때(1623)부터 고종 때까지의 것이 남아 있다. 국보이며 세계 기록 유산이다. 승정원은 1894년 갑오개혁 때 승선원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