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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石窟庵)은 경상북도 경주 토함산에 있는 통일 신라의 인공 석굴 사원으로, 경덕왕 때 김대성이 짓기 시작해 혜공왕 때 완성했으며, 본존불을 중심으로 보살·제자·사천왕 등을 정교하게 배치했다. 정식 이름은 경주 석굴암 석굴이다.

『삼국유사』는 751년(경덕왕 10) 김대성이 불국사와 함께 짓기 시작했으나 774년 그가 죽자 나라에서 마무리했다고 전한다. 국가유산청은 751년 짓기 시작해 774년(혜공왕 10) 완성했으며 처음에는 석불사라 불렀다고 설명한다.[1] 다만 불국사 삼층 석탑(석가탑)에서 나온 고려 때의 중수 기록에는 불국사가 742년 무렵 짓기 시작되었다고 되어 있어, 석굴암의 창건도 751년보다 이를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2] 토함산은 신라 5악 가운데 동악으로, 동해가 내다보이는 자리에 세워 나라를 지키는 뜻도 담았다고 본다.

  • 인공 석굴 - 자연 암벽을 파 들어간 인도·중국의 석굴과 달리, 다듬은 화강암으로 석굴을 짜 맞추고 바깥을 흙으로 덮어 만들었다.
  • 전실·통로·주실 - 네모난 전실과 둥근 주실을 좁은 통로가 잇는다. 주실의 둥근 천장은 360여 개의 넓적한 돌을 짜 맞추어 쌓았다.[1]
  • 비례 - 본존불 대좌 지름(당척 12자)을 기본 단위로 삼아 전실·주실과 불상의 크기를 정밀한 비례로 맞추었다. 본존불은 주실 한가운데보다 조금 뒤에 놓아, 참배하는 사람이 보기에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2]
  • 본존불 -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결가부좌한 채 오른손으로 땅을 짚는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여래 좌상이다. 균형 잡힌 몸과 고요한 얼굴로 통일 신라 불교 조각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 둘레의 조각 - 전실에 팔부신중, 통로 입구에 금강역사, 통로에 사천왕, 주실 벽에 범천·제석천과 보살·10대 제자, 본존 바로 뒤에 십일면관음보살을 새겼다. 국가유산청은 본래 40구 가운데 38구가 남았다고 하고, 백과사전은 주실의 조각만 24구로 센다.

일제 강점기에 해체·보수하면서 콘크리트를 덮어 습기가 차는 문제가 생겼고, 1960년대 다시 보수해 지금 모습을 갖추었다. 1976년부터는 유리벽 밖에서만 볼 수 있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고, 1995년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올랐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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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시대 특징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고구려 연가 7년 명문, 경남 의령 출토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 백제 '백제의 미소'
석굴암 본존불 통일 신라 인공 석굴, 이상적 비례
이불병좌상 발해 두 부처가 나란히 앉음, 고구려 계승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고려 초기 거대한 크기, 지방 호족 문화
  1. ↑ 1.0 1.1 1.2 경주 석굴암 석굴,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10-19 확인.
  2. ↑ 2.0 2.1 경주 석굴암 석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