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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新羅, 기원전 57~935)는 경주의 사로국에서 출발해 진한 지역을 통합하고, 6세기에 한강 유역과 가야를 차지한 뒤 7세기에 백제·고구려를 무너뜨려 삼국을 통일했으며, 935년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할 때까지 약 1천 년 동안 이어진 나라이다.

경주 평야의 여섯 마을(6부)이 박혁거세를 왕으로 세워 나라를 열었다고 전한다. 처음에는 박·석·김 세 성씨가 번갈아 왕위에 올랐으나, 4세기 후반 내물 마립간 때부터 김씨가 왕위를 이었다. 『삼국사기』는 신라사를 상대·중대·하대로 나누는데, 중대는 태종 무열왕부터 혜공왕까지(654~780), 하대는 그 뒤 멸망까지이다.[1]

성장과 삼국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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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물 마립간 - 김씨 왕위 세습, 마립간 칭호. 400년 왜가 쳐들어오자 고구려 광개토 대왕의 군대가 와서 물리쳤다.
  • 지증왕 - 국호를 신라, 왕호를 왕으로 정했다. 수도에 시장을 열고 동시전을 두었으며, 512년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했다.
  • 법흥왕 - 병부 설치(517), 율령 반포(520), 백관의 공복 제정, 상대등 설치,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 공인(527), 건원 연호, 금관가야 병합(532).
  • 진흥왕 -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하고 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했다. 백제와 함께 한강 유역을 빼앗은 뒤 553년 백제 몫까지 차지했고, 554년 관산성에서 백제 성왕을 죽였다. 562년 대가야를 병합했다(→ 가야). 단양 적성비와 북한산·창녕·황초령·마운령 순수비를 남겼다.
  • 진평왕 - 581년 관리 인사를 맡는 위화부를, 591년 외국 사신을 맞는 영객부를 두었다. 원광이 걸사표를 지었다.
  • 선덕 여왕·진덕 여왕 - 첨성대·분황사·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고, 647년 비담과 염종의 난을 김유신이 진압했다. 진덕 여왕은 651년 왕명을 받드는 집사부를 두고, 왜 사신을 맞던 영객전을 영객부에 합쳤다.
  • 통일 - 태종 무열왕 때 660년 백제를, 문무왕 때 668년 고구려를 무너뜨렸다. 이어 나당 전쟁에서 매소성(675)·기벌포(676) 싸움에 이겨 당군을 몰아냈다.

통일 신라의 정비와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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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왕 - 681년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귀족을 숙청했다. 682년 국학을 세우고, 지방을 9주 5소경으로, 군사를 중앙의 9서당과 지방의 10정(9서당 10정)으로 정비했다. 관료전을 지급하고(687) 녹읍을 폐지했다(689).
  • 효소왕·성덕왕 - 695년 수도에 서시와 남시를 더 두었다. 성덕왕은 718년 물시계인 누각을 처음 만들고 누각전을 두어 시간을 재게 했으며, 722년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했다.
  • 하대 - 780년 혜공왕이 죽은 뒤 진골 귀족 사이의 왕위 다툼이 이어졌다. 822년 김헌창의 난, 장보고의 청해진 활동, 889년 원종·애노의 난이 일어났고, 지방 호족이 자라났다. 6두품 최치원은 진성 여왕에게 시무책을 올렸다.
  • 멸망 - 견훤의 후백제와 궁예의 후고구려가 일어나 후삼국 시대가 되었고, 935년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했다.
  • 신분 - 골품제가 관등 승진과 일상생활까지 제한했다.
  • 귀족 회의 - 상대등이 이끄는 화백 회의가 만장일치로 중대사를 정했다(→ 삼국의 귀족 회의).
  • 관청 - 집사부(국정 총괄, 장관은 중시·시중), 병부, 위화부(인사), 영객부(외국 사신 접대), 창부(재정) 등.

다른 나라의 제도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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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나라
위화부·영객부·집사부, 수도의 동시·서시·남시, 누각전 신라
왕 아래 상가·대로·패자 등의 관직, 서옥제, 진대법 고구려
6좌평과 달솔 등 16관등, 정사암 회의, 22담로 백제
신성 지역 소도, 천군 삼한 (→ 한반도의 초기 국가)
정당성 등 3성 6부, 5경 15부 62주 발해
  1. ↑ 신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