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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죽회(松竹會)는 1913년 무렵 평양 숭의 여학교의 교사와 졸업생·학생들이 조직한 여성 비밀 결사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망명 지사의 가족을 돕다가 3.1 운동 때 여성 참여의 바탕이 되었다.

송죽 결사대라고도 한다. 숭의 여학교 교사 김경희·황애시덕(황에스더)과 졸업생 안정석 등이 만들었고, 김경희가 회장을 맡았다. 이름은 소나무와 대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지조를 지키자는 뜻이다. 회원은 기존 회원 1명의 추천을 받고 전원이 찬성해야 들어올 수 있었고, 달마다 회비 30전을 냈다. 매주 기숙사에서 기도회 형식으로 모여 토론과 역사 강좌를 열었다.[1][2]

  • 이원 조직 - 창립 회원 20명 남짓을 '송(松) 형제'로 삼아 핵심을 이루고, 이들이 각자 '죽(竹) 형제'라는 하부 조직을 꾸려 늘려 나갔다.
  • 점조직 - 이문회·유신회·공주회·기도 동지회 등 다른 이름을 쓰고 점조직으로 움직여 끝내 일본 경찰에 드러나지 않았다.
  • 확산 - 1916년 회원들이 졸업한 뒤 각지 학교의 교사가 되면서 지방으로 조직이 퍼졌다. 일본·미국으로 유학한 회원을 통해 나라 밖으로도 이어졌다.
  • 자금 -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20년 숨진 김경희를 기린 추도사에 따르면, 회에서 모은 독립운동 자금이 600여 원에 이르렀다.[1]

1910년대 무단 통치 아래에서 여성들이 스스로 꾸린 비밀 결사였다. 3.1 운동 때 지방에서 여성 참여가 많았던 데에는 송죽회 조직의 힘이 컸고, 3.1 운동 뒤 평양을 중심으로 한 애국 부인회 활동도 이 조직을 바탕으로 했다.[1]

1910년대 비밀 결사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단체 때 사실
독립 의군부 1912년 임병찬이 고종의 밀지를 받아 조직, 국권 반환 요구서 제출 계획
송죽회 1913년 무렵 평양 숭의 여학교 중심의 여성 비밀 결사
대한 광복회 1915년 박상진이 대구에서 조직, 공화정 지향, 친일 부호 처단
조선 국민회 1917년 평양 숭실 학교 출신 중심의 비밀 결사
  1. ↑ 1.0 1.1 1.2 송죽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김경희, 독립운동인명사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