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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우회(槿友會, 1927~1931)는 1927년 5월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 여성들이 힘을 합쳐 서울에서 창립한 여성 운동 단체로, 신간회의 자매 단체로 활동했다.

3.1 운동 이후 여성 단체가 잇달아 생겨났다. 기독교계의 조선 여자 기독교 청년회 연합회(YWCA, 1922)처럼 계몽과 교육을 앞세운 단체가 있었고, 1924년에는 사회주의 여성 단체인 조선 여성 동우회가 결성되었다. 조선 여성 동우회는 여성이 가정과 임금과 성의 노예가 되어 있다고 비판하며 사회주의적 여성 해방을 주장했다.[1] 1920년대 중반 민족 유일당 운동이 일어나고 1927년 2월 신간회가 창립되자, 여성계도 두 계열이 하나로 뭉쳐 근우회를 세웠다.[2]

  • 창립 - 1927년 5월 서울에서 창립 총회를 열었다. 김활란·유각경 등 기독교·민족주의 계열과 정칠성·황신덕·박원희 등 사회주의 계열 인사가 함께 참여했다. 이름의 '근'(槿)은 무궁화를 뜻한다.
  • 규모 - 서울에 본부를 두고 전국과 일본·만주에 지회를 세워, 1930년 무렵 지회가 60여 개에 이르렀다. 회원은 가정 부인, 직업 여성, 학생, 노동 여성 등 다양했다.
  • 기관지 - 1929년 기관지 『근우』를 펴냈다.
  • 강령 - 조선 여성의 공고한 단결과 지위 향상을 내걸었다. 운동의 목표로 봉건적 굴레에서 벗어나는 여성 해방과 일제 침략으로부터의 민족 해방을 함께 제시했다.
  • 행동 강령 - 여성에 대한 사회적·법률적 차별 철폐, 봉건적 인습과 미신 타파, 조혼 폐지와 결혼의 자유, 인신매매와 공창 폐지, 여성 노동자의 임금 차별 철폐와 산전·산후 휴가 보장 등을 요구했다.
  • 계몽 활동 - 부인 강좌·순회강연·야학을 열어 여성의 문맹을 없애고 민족의식을 일깨웠다.
  • 사회 운동 참여 - 여학교 동맹 휴학과 여성 노동자 파업의 진상을 조사하고 지원했으며,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 이후 학생 운동을 후원했다.

내부에서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의 대립이 깊어지고 자금난과 일제의 탄압이 겹쳤다. 1931년 신간회가 해소되자 근우회도 정식 해산 발표 없이 활동을 멈추었다.

1920년대 사회 운동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단체·운동
여성계의 민족 협동 전선, 신간회의 자매 단체 근우회(1927)
사회주의 여성 단체, 근우회 결성의 바탕 조선 여성 동우회(1924)
비타협적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민족 협동 전선 신간회(1927)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 형평 운동(조선 형평사, 1923)
어린이날 제정, 잡지 『어린이』 소년 운동 (→ 방정환)
노동·농민 단체를 묶은 전국 조직 조선 노농 총동맹(1924)
「여권통문」 발표, 순성 여학교 설립 찬양회(1898) (→ 여권통문)
『여유당전서』 간행, 실학 연구 조선학 운동(1934)
  1. ↑ 조선여성동우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근우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