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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三司)는 조선 시대에 언론을 맡은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을 함께 이르는 말로, 왕과 고위 관리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삼사의 관리는 학문과 덕망을 갖춘 사람 가운데에서 뽑혔고, 품계는 높지 않아도 청요직으로 존중받았다. 이들은 정책과 인사의 잘잘못을 따지고 왕에게 바른말을 올려 권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았다. 사림이 성장한 뒤에는 삼사가 사림 정치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이조 전랑이 삼사 관리를 추천하는 권한(통청권)을 쥐고 있어 붕당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했으며, 영조 때 이 권한을 없앴다.[1]

  • 사헌부 - 장관은 대사헌(종2품)이다.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고 풍속을 바로잡으며 정치의 잘잘못을 논했다. 상대·백부라고도 불렀다.[2]
  • 사간원 - 장관은 대사간(정3품)이다. 왕의 잘못을 바로잡도록 간쟁하고 정책을 비판했다. 미원이라고도 불렀다.
  • 홍문관 - 궁중의 책을 관리하고 문서를 다루며 왕의 자문에 응했다. 영의정이 겸하는 영사가 있었으나 실제 수장은 대제학(정2품)이었다. 왕에게 유교 경전과 역사를 강의하는 경연과 세자를 가르치는 서연을 주관했다. 세조 때 집현전을 없앤 뒤, 성종 때 집현전의 기능을 이어받는 기구로 키웠다. 옥당이라고도 불렀다.

대간과 서경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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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와 사간원을 합쳐 대간 또는 양사라 했다. 대간은 5품 이하 관리를 임명할 때 그 사람의 가문과 경력을 살펴 동의하는 서경권을 행사했고, 법을 만들거나 고칠 때도 서경을 거치게 했다. 이는 고려의 어사대·중서문하성 낭사(대간)가 가졌던 권한을 이은 것이다. 대간이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으면 홍문관이 합세해 삼사가 함께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이름이 같거나 비슷한 기구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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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기구
감찰, 5품 이하 관리 임명 서경권 사헌부(대간)
간쟁, 5품 이하 관리 임명 서경권 사간원(대간)
대제학이 이끌며 경연을 주관, 옥당 홍문관
왕명 출납, 은대·후원 승정원
정조 때 세운 학문·정책 기구, 『내각일력』 규장각
을묘왜변으로 상설화, 임진왜란 뒤 국정 총괄 비변사
고려의 삼사 - 나라의 돈과 곡식의 출납·회계를 맡음 고려의 삼사
  1. ↑ 삼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사헌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