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은 1950년 1월 12일 미국 국무 장관 딘 애치슨(Dean Acheson)이 워싱턴의 전국 신문 기자 클럽(National Press Club) 연설에서 밝힌 미국의 극동 방위선으로, 알류샨 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잇고 한국과 타이완을 그 밖에 두었다.

미국 국무 장관 딘 애치슨

1949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고 같은 해 6월 주한 미군이 철수를 마친 뒤, 미국은 중국 문제에 끼어들지 않으면서 일본 열도를 전략적 방위선으로 삼아 공산 세력의 팽창을 막는 방안을 찾고 있었다. 애치슨의 연설은 이 구상을 드러낸 것으로, 미국이 직접 지킬 선을 알류샨 열도에서 일본·오키나와(류큐)를 거쳐 필리핀까지로 그었다. 선 밖의 지역이 공격을 받으면 먼저 그 나라 국민이 맞서고, 다음으로 국제 연합에 기대야 한다고 말했다.[1]

당시의 보도와 평가

편집 원본 편집
  • 국내 신문은 처음에 이 연설을 다르게 전하기도 했다. 『서울신문』(1950년 1월 14일)은 UP 통신을 받아 애치슨이 "미국은 한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하는 것은 패배주의"라고 말했고, 일본과 한국이 있는 북아시아에는 미국이 직접 책임을 진다고 했다고 보도했다.[2]
  • 그러나 방위선 자체에서 한국이 빠졌다는 점은 미국 의회에서도 문제가 되었고, 한국 정부의 불안을 키웠다.
  • 1949년 10월 중국 공산화, 1949년 6월 주한 미군 철수와 함께 애치슨 라인 발표는 북한이 남침을 결심하게 된 국외 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다만 이 연설이 실제로 남침을 부추겼다는 직접 증거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3]
  •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하자 미국은 곧바로 국제 연합 안전 보장 이사회를 소집하고 군대를 보내 6.25 전쟁에 참전했다.

이승만 정부 시기 사건의 순서

편집 원본 편집
시기 사건
1948.9 반민족 행위 처벌법 제정,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구성
1949.6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 주한 미군 철수 완료
1950.1 애치슨 라인 발표
1950.6 6.25 전쟁 발발
1954.11 사사오입 개헌
1959.7 조봉암 사형 집행(진보당 사건)
1960.6 제3차 개헌으로 민의원·참의원 양원제 국회 구성 (→ 장면 내각)
  1. ↑ 6·25전쟁의 배경, 나라기록 6·25전쟁, 국가기록원, 2026-10-19 확인.
  2. ↑ 「애치슨 미 국무부장관, 미국 전국신문클럽 연설에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책임을 역설」(『서울신문』 1950년 1월 14일), 자료대한민국사 제16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3. ↑ 한국전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