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순천 10.19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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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 10·19 사건(麗水順天十一九事件, 1948)은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한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 사건 진압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한 뒤,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전남 동부 지역의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여순 사건'이라고도 한다.
제14연대는 1948년 5월 여수 신월리에서 창설되었는데, 모병 과정에서 남로당 세포가 침투했고 병사들 사이에는 경찰에 대한 반감이 컸다. 10월 19일 제주도 출동 명령이 내려지자 그날 밤 지창수 등 좌익 하사관들이 "동족상잔의 제주도 출동을 반대한다"며 부대원을 선동했다. 1,000~2,000명으로 추산되는 병력이 봉기해 여수를 장악하고, 20일에는 순천까지 점령했으며 22일 무렵 전남 동부의 여러 군으로 세력을 넓혔다.[1]
- 점령지의 보복 - 여수·순천에서는 인민 위원회가 세워졌고, 경찰관과 우익 인사가 처형되었다.
- 진압 - 정부는 광주에 전투 사령부를 두고 진압군을 보냈다. 10월 22일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이 내려졌고, 진압군은 23일 순천을, 27일 여수를 되찾았다.
- 민간인 희생 - 초기 진압에 실패한 군은 강경 작전으로 돌아서 민가를 샅샅이 뒤져 협력자를 가려냈고, 이 과정에서 사건과 무관한 민간인이 많이 희생되었다. 가담자 처벌은 비공개 군법 회의로 이어졌다.
- 지리산 빨치산 - 여수를 빠져나간 반군 주력은 지리산 등으로 들어가 유격 활동을 벌였고, 토벌 과정에서도 민간인 희생이 이어졌다.[1]
- ↑ 1.0 1.1 1.2 여수·순천 10·19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
- ↑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출범,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2-01-21 게재,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