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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了世, 1163~1245)는 무신 집권기에 강진 만덕산 백련사에서 백련 결사를 열어 천태종의 참회 수행과 정토 신앙을 이끈 고려의 승려이다.

자는 안빈, 시호는 원묘국사이다. 신번현(지금의 의령) 사람으로 속성은 서씨이며 아버지는 호장이었다. 12세에 합천 천락사에서 출가해 천태 교학을 배웠고, 22세에 승과에 급제했다. 1198년(신종 1) 개경 고봉사 법회에서 이름을 떨쳤으나 명리를 버리고 동지들과 산사로 떠났다. 이때 지눌이 게송을 보내 선을 함께 닦자고 권해, 한동안 지눌의 결사에 함께했다.[1]

  • 깨달음 - 1208년(희종 4) 월출산 약사난야에서 천태의 『묘종초』를 강의하다 크게 깨달았다. 이후 날마다 53불에게 열두 번씩 예배하는 참회 수행을 그치지 않아 '서참회'라 불렸다.
  • 백련사 - 탐진현(강진)의 지방민 최표·최홍·이인천 등이 만덕산 옛 절터로 맞아들였다. 1211년 공사를 시작해 1216년(고종 3) 80여 칸의 절을 완성했다.
  • 결사의 본격화 - 1232년(고종 19) 4월 8일 보현도량을 열고 법화삼매를 닦아 극락왕생을 구했으며, 1236년 제자 천책이 「백련결사문」을 지어 결사를 널리 알렸다. 『법화경』을 외우게 하여 외운 사람이 천여 명이었고, 결사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300여 명이었다.[2]
  • 성격 - 지방민의 호응이 컸고, 개경에서 유학을 공부하던 젊은이들(뒤의 2세 사주 천인, 4세 사주 천책 등)도 출가해 들어왔다. 왕실과 최씨 무신 정권과도 관계를 맺었다.
  • 만년 - 1237년 선사의 승계를 받았고, 1245년(고종 32) 천인에게 백련사를 맡기고 7월에 입적했다. 천태 3대부의 요점을 간추린 『삼대부절요』를 펴냈으나 전하지 않는다.

두 결사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정혜결사(수선사) 백련 결사
중심 인물 지눌 요세
종파 선종 천태종
중심지 순천 송광사 강진 만덕산 백련사
수행 돈오점수, 정혜쌍수 법화삼매와 참회, 정토 왕생
지지층 지식인·관료 중심 지방민의 호응이 큼
  1. ↑ 최자, 「만덕산 백련사 원묘국사 비명」, 『동문선』 권117,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2026-10-18 확인.
  2. ↑ 요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