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
IT 위키
더 많은 작업
요세(了世, 1163~1245)는 무신 집권기에 강진 만덕산 백련사에서 백련 결사를 열어 천태종의 참회 수행과 정토 신앙을 이끈 고려의 승려이다.
- 깨달음 - 1208년(희종 4) 월출산 약사난야에서 천태의 『묘종초』를 강의하다 크게 깨달았다. 이후 날마다 53불에게 열두 번씩 예배하는 참회 수행을 그치지 않아 '서참회'라 불렸다.
- 백련사 - 탐진현(강진)의 지방민 최표·최홍·이인천 등이 만덕산 옛 절터로 맞아들였다. 1211년 공사를 시작해 1216년(고종 3) 80여 칸의 절을 완성했다.
- 결사의 본격화 - 1232년(고종 19) 4월 8일 보현도량을 열고 법화삼매를 닦아 극락왕생을 구했으며, 1236년 제자 천책이 「백련결사문」을 지어 결사를 널리 알렸다. 『법화경』을 외우게 하여 외운 사람이 천여 명이었고, 결사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300여 명이었다.[2]
- 성격 - 지방민의 호응이 컸고, 개경에서 유학을 공부하던 젊은이들(뒤의 2세 사주 천인, 4세 사주 천책 등)도 출가해 들어왔다. 왕실과 최씨 무신 정권과도 관계를 맺었다.
- 만년 - 1237년 선사의 승계를 받았고, 1245년(고종 32) 천인에게 백련사를 맡기고 7월에 입적했다. 천태 3대부의 요점을 간추린 『삼대부절요』를 펴냈으나 전하지 않는다.
| 정혜결사(수선사) | 백련 결사 | |
|---|---|---|
| 중심 인물 | 지눌 | 요세 |
| 종파 | 선종 | 천태종 |
| 중심지 | 순천 송광사 | 강진 만덕산 백련사 |
| 수행 | 돈오점수, 정혜쌍수 | 법화삼매와 참회, 정토 왕생 |
| 지지층 | 지식인·관료 중심 | 지방민의 호응이 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