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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징옥의 난(李澄玉의 亂)은 1453년(단종 1) 10월 함길도 도절제사 이징옥이 계유정난에 반발해 일으킨 반란으로, 조선 왕조에 맞선 첫 대규모 반란이다.

이징옥은 세종 때 김종서와 함께 6진 개척에 공을 세운 무장이다. 1453년 수양 대군이 계유정난으로 김종서·황보인을 죽인 뒤 이징옥을 김종서의 일당으로 몰아 파면하고, 후임으로 박호문을 몰래 보냈다. 정변 소식을 들은 이징옥은 박호문을 죽이고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올라가, 종성에서 스스로 대금 황제(大金皇帝)라 일컫고 격문을 돌려 여진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두만강을 건너기 전 종성에서 피살되었다.[1][2]

  • 진압 - 종성의 정종과 호군 이행검 등이 밤에 습격해 죽였다. 정종의 직책을 종성 부사로 적은 자료와 종성 판관으로 적은 자료가 있다.
  • 영향 - 난이 진압된 뒤 함길도는 반역의 땅으로 차별을 받았고, 이 불만은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으로 이어졌다.
  • 다른 평가 - 조선 후기 채제공은 이징옥이 세조의 불법을 명에 알리고 단종을 복위하려 했을 뿐 황제가 되려던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조선 전기 반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건 때 내용
이징옥의 난 1453년 단종 계유정난에 반발, 종성에서 대금 황제 칭함
이시애의 난 1467년 세조 함길도 길주, 유향소 폐지로 이어짐
이괄의 난 1624년 인조 인조반정 공신 대우에 불만, 한양 점령
  1. ↑ 이징옥의 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대한 반발, 『신편 한국사』 22,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