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IT 위키
더 많은 작업
단종(端宗, 1441~1457, 재위 1452~1455)은 조선의 제6대 왕으로, 12세에 즉위했으나 숙부 수양 대군(세조)의 계유정난으로 실권을 잃고 왕위를 넘겨준 뒤 영월에 유배되어 죽었다.
문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현덕 왕후 권씨이다. 1452년 문종이 죽자 12세에 왕위에 올랐다. 수렴청정을 할 대비가 없었으므로 문종의 유언을 받은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김종서 등 고명대신이 정치를 이끌었고, 성삼문·박팽년·신숙주 등 집현전 출신 학자들이 곁에서 보좌했다. 대신들이 관리 후보자 이름에 누런 표시를 해 올리면 왕이 그대로 낙점하는 황표정사가 행해질 만큼 왕권이 약했다.[1]
- 계유정난(1453) - 1453년(단종 1) 10월 숙부 수양 대군이 한명회·권람 등과 함께 김종서를 집에서 죽이고 황보인 등 대신을 대궐로 불러 죽였다. 안평 대군이 대신들과 짜고 종사를 위태롭게 했다는 죄를 씌웠고, 안평 대군은 강화 교동으로 귀양 보냈다가 사사했다. 수양 대군은 영의정이 되어 군국의 대권을 쥐었고, 정변 참가자들은 정난공신이 되었다(→ 세조 (조선)).[2]
- 이징옥의 난(1453) - 김종서의 사람으로 지목된 함길도 도절제사 이징옥은 계유정난 직후 파면 통보를 받자 반란을 일으켰다. 후임 박호문을 죽인 뒤 종성에서 스스로 대금 황제라 일컫고 여진의 도움을 구했으나종성 부사 정종 등에게 살해되었다. 조선 왕조에 맞선 첫 대규모 반란이었고, 단종 재위 중의 일이다.[3]
- 양위(1455) - 단종은 1455년 윤6월 수양 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다.
- 사육신 사건(1456) -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이 명 사신 환영 연회에서 세조를 제거하고 상왕을 복위하려 했으나 김질의 고발로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세조는 주동자가 집현전 출신이라 하여 집현전을 없애고 경연을 멈추었다.
- 노산군 강등과 영월 유배(1457) - 상왕이 복위 모의에 관련되었다 하여 노산군으로 낮추어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보냈다.
- 금성 대군의 복위 모의(1457) - 경상도 순흥에 유배된 세조의 동생 금성 대군이 순흥 부사 이보흠과 지역 유생을 모아 노산군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사사되었다. 이 일로 순흥 도호부가 폐지되었고, 노산군도 같은 해 10월 죽임을 당했다. 영주 순흥에 금성 대군 신단이 남아 있다.
- 복위(1698) - 1681년(숙종 7) 노산 대군으로 추봉되었고, 1698년(숙종 24) 왕으로 복위되어 '단종'이라는 묘호를 받았다. 능은 영월의 장릉이다. 사육신도 1691년 숙종 때 관작이 회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