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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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학당(梨花學堂)은 1886년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메리 스크랜턴이 서울 정동에 세운 한국 최초의 근대식 여학교로, 오늘날 이화 여자 고등학교와 이화 여자 대학교로 이어졌다.

1885년 조선에 온 스크랜턴 부인은 여성 교육을 선교의 중요한 일로 보고 정동 언덕의 초가집들을 사들여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딸을 서양인에게 맡기려는 집이 없어 학생을 구하지 못하다가, 1886년 5월 31일 처음으로 한 여학생을 받았다. 부모의 허락 없이는 아이를 멀리 데려가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써 주어야 했다. 처음에는 양반집 딸을 찾았으나 결국 가난한 집 아이와 고아가 첫 학생이 되었다.[1]
- 교명 하사 - 1887년 학생이 7명으로 늘자 고종이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을 지어 외무독판 김윤식을 통해 현판을 보냈다. '이화'는 배꽃이라는 뜻이다. 스크랜턴은 원래 '전신 학교'라 이름 지으려 했으나 고종의 뜻을 받들어 이 이름을 택했다.
- 학생 - 1888년 18명, 1893년 30명으로 늘었다. 박영효의 딸처럼 개화파 집안의 딸과 서민 집 딸이 함께 배웠다.
- 교육 - 교사는 모두 여성 선교사였고, 남자 선생이 맡던 한문 시간에는 선생이 뒤로 돌아앉아 가르쳤다. 체조를 가르쳤다가 양반 집안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교육 목표는 '한국인을 보다 나은 한국인으로' 만드는 데 두었다.[1]
- 확대 - 뒤에 보통과·중등과·고등과·대학과를 두어 초등부터 대학 교육까지 맡았다. 대학과는 이화 여자 대학교의 출발점이 되었다.
여성에게 공식 교육의 기회를 처음 연 학교로, 많은 여성 지도자를 길러 냈다. 3.1 운동 때 이 학교 학생이던 유관순이 고향 천안에서 만세 시위를 이끌었다. 서울시의 근대 교육 연재도 이화 학당을 1886년 메리 스크랜턴이 세우고 1887년 교명을 받은 여학교로 소개한다.[2]
- ↑ 1.0 1.1 이화학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 ↑ 남녀노소, 빈부귀천 없이 배우다! 근대 교육의 시작은?, 내 손안에 서울, 서울특별시, 2023-07-26,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