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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天道敎)는 1905년 동학의 3대 교주 손병희가 동학의 이름을 바꾸어 세운 종교로, 『만세보』 발행과 학교 운영, 3.1 운동 주도, 잡지 『개벽』·『어린이』 발간과 소년·농민 운동으로 민족 운동을 이끌었다.

서울 종로구의 천도교 중앙대교당

동학은 1860년 최제우가 창시했고, 2대 교주 최시형이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펴내며 교단을 정비했다.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실패한 뒤 교단은 큰 탄압을 받았다. 3대 교주 손병희는 일본에 머물며 교단을 이끌다가, 동학 간부 이용구가 친일 단체 일진회와 손잡고 교단을 끌고 가자 1905년 12월 동학을 천도교로 고쳐 부르고 교단을 근대 종교로 새로 세웠다. 이듬해 이용구 등 친일 세력을 쫓아냈고, 이들은 시천교를 따로 만들었다.[1]

  • 인내천 -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뜻으로,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평등 사상이다. 동학의 시천주 사상을 손병희 때 이렇게 정리했다.
  • 경전 -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경전으로 삼는다.
  • 『만세보』(1906) - 오세창이 사장을 맡아 펴낸 천도교의 기관지이다. 국한문 혼용 기사에 한글 음을 달았고,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를 연재했다. 1907년 재정난으로 넘어가 친일 신문 『대한신문』이 되었다.[2]
  • 교육 - 보성 학교·동덕 여학교 등을 인수해 운영했다.
  • 3.1 운동(1919) - 손병희를 비롯한 천도교 지도자들이 기독교·불교 대표와 함께 민족 대표 33인으로 독립 선언서에 서명했다. 독립 선언서는 천도교의 인쇄소 보성사에서 찍었다(3.1 운동).
  • 잡지와 문화 운동(1920년대) - 종합 잡지 『개벽』(1920)과 『신여성』·『학생』 같은 월간 잡지를 펴냈고[1], 천도교 소년회를 만든 방정환이 어린이날을 정하고 잡지 『어린이』를 펴냈다. 조선 농민사를 세워 농민 계몽에도 힘썼다.
  • 6.10 만세 운동 - 1926년 천도교 일부 세력이 사회주의 계열과 함께 만세 시위를 준비했다(6.10 만세 운동).

종교계의 민족 운동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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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대표 활동
천도교 『만세보』, 3.1 운동 주도, 『개벽』·『어린이』, 천도교 소년회
대종교 단군 신앙, 중광단·북로 군정서 등 무장 투쟁(북로 군정서)
개신교 학교·병원 설립, 신사 참배 거부 운동
원불교 박중빈 창시, 새 생활 운동·저축 운동
천주교 고아원·양로원 운영, 의민단 조직
불교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 사찰령 폐지 운동
  1. ↑ 1.0 1.1 천도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만세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