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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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통문(女權通文, 1898)은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의 양반 여성들이 이소사·김소사의 이름으로 발표해 여성의 교육권·직업권·참정권을 주장한 글로, 한국 최초의 여성 인권 선언으로 꼽힌다.

원래 이름은 「여학교 설시 통문」이다. 여성도 몸과 팔다리, 눈과 귀가 남성과 다름이 없는데 어찌 평생 깊은 방에 갇혀 남성의 통제를 받아야 하느냐고 묻고, 여학교를 세워 남녀가 평등해지자고 했다. 『제국신문』이 9월 6일 일부를, 『황성신문』이 9월 8일, 『독립신문』이 9월 9일 전문을 실었다.[1]
통문에 뜻을 같이한 양반 부인, 서민 부인, 기생 등이 모여 1898년 9월 12일 한국 최초의 근대적 여성 단체인 찬양회를 만들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창립 때 회원이 400명가량이었다고 전한다. 찬양회는 관립 여학교를 세워 달라고 고종에게 상소했고, 고종이 약속했으나 보수 유생의 반대와 재정 부족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자 스스로 1899년 4월 순성 여학교를 열었는데, 한국인이 세운 첫 사립 여학교로 1903년 무렵까지 김양현당이 교장을 맡아 이끌었다. 찬양회 회원들은 만민 공동회에도 참여했고, 『제국신문』은 찬양회의 활동을 자주 실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