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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李穡, 1328~1396)은 고려 말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호는 목은이며, 공민왕 때 성균관 대사성이 되어 정몽주 등을 학관으로 천거하고 성리학을 널리 퍼뜨려 신진 사대부의 스승이 되었다.

한산(지금의 충청남도 서천) 사람으로, 원의 과거에 급제한 학자 이곡의 아들이며 이제현의 문인이다. 고려의 향시와 원의 과거(제과)에 모두 합격해 원에서도 벼슬을 지냈다. 고려에 돌아와 공민왕의 개혁에 참여했고, 우왕 때는 왕의 스승이 되었다. 문하에서 고려에 충절을 지킨 정몽주·길재·이숭인과 조선 건국에 앞장선 정도전·권근·하륜이 함께 나왔다. 시문을 모은 『목은집』이 전하며, 서천의 문헌서원에 아버지 이곡과 함께 모셔져 있다.[1]

  • 개혁 건의 - 1352년 토지 제도 개혁, 국방, 교육 진흥, 불교 억제 등을 담은 개혁안을 올렸다. 1356년에는 인사권을 쥐고 있던 정방을 없애도록 건의했다.
  • 삼년상 시행 - 유학의 예법에 따른 삼년상 제도를 건의해 시행하게 했다.
  • 성균관 대사성 - 1367년 공민왕이 성균관을 다시 세우자 대사성이 되어 김구용·정몽주·이숭인 등을 학관으로 뽑았다. 이들과 경전을 토론하며 성리학 보급을 이끌었다.
  • 온건 개혁파 -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이 쫓겨나자 조민수와 함께 창왕을 세우고, 명에 가서 창왕의 입조를 청하는 등 이성계 세력을 견제했다. 고려 왕조를 유지하면서 개혁하자는 입장이었고, 사전 혁파에 반대했다.
  • 유배와 은거 - 이성계 세력에 밀려 여러 차례 유배되었고, 1392년 정몽주가 죽은 뒤 다시 쫓겨났다. 조선 건국 뒤 태조가 벼슬을 권했으나 끝내 나가지 않았다.

고려 말 신진 사대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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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인물
성균관 대사성으로 정몽주 등을 학관으로 천거, 『목은집』 이색
『불씨잡변』으로 불교 비판, 『조선경국전』 정도전
고려 왕조를 지키려다 선죽교에서 피살, 『주자가례』에 따른 가묘 보급 정몽주
『입학도설』, 조선 초 관학 정비 권근
사전 혁파를 건의해 과전법을 이끎 조준
원의 만권당에서 학자들과 교유, 『사략』 이제현

다른 시대 학자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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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인물
『화랑세기』·『고승전』 저술 김대문 (신라)
왕명으로 『삼국사기』 편찬 김부식 (고려 전기)
예안 향약, 『성학십도』 이황 (조선)
  1. ↑ 이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