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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 동맹(朝鮮建國同盟, 1944~1945)은 일제의 패망을 내다본 여운형이 1944년 8월 국내에서 조직한 비밀 독립운동 단체로, 광복 직후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의 바탕이 되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밀리기 시작하자 여운형은 광복 뒤 새 나라를 세울 준비를 하려고 조동호·현우현·황운·이석구·김진우 등과 비밀 결사를 만들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결성일을 1944년 8월 10일, 장소를 서울 경운동 현우현의 집(삼광의원)으로 적고, 『신편 한국사』는 1944년 8월로만 적는다. 위원장은 여운형이었고, 뒤에 이여성·이만규·김세용·이상백 등이 가담해 조직이 커졌다.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함께 참여한 것이 특징이다.[1][2]

  • 3대 원칙 - 말하지 않고(불언), 글로 남기지 않고(불문),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불명)는 원칙으로 비밀을 지켰다.
  • 강령 - 각 파가 대동단결해 일본 제국주의 세력을 몰아내고 자유와 독립을 되찾을 것, 반추축국(연합국)과 협력해 대일 연합 전선을 만들 것, 새 나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세우고 특히 노동 대중의 해방에 힘쓸 것을 내걸었다.
  • 하부 조직 - 전국에 세포 조직을 두고 농민 동맹, 부인 동맹, 청년·학생·철도 종업원·교원 조직을 따로 꾸렸다. 박승환을 중심으로 군사 활동도 계획했고, 옌안의 조선 독립 동맹과 연락하려 했다.[1]
  • 1945년 8월 4일 활동이 일본 경찰에 드러나 조동호·이걸소 등 간부가 붙잡혔다.
  • 일본의 항복을 미리 알고 8월 11일 이만규에게 독립 선언문을 쓰게 했고, 8월 15일 건국 청년 치안대를 꾸렸다.
  • 광복 직후 여운형과 안재홍이 중심이 된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건준)로 개편되어 해방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다.
  • 1945년 10월 정당으로 다시 출발한다고 선언했고, 11월 12일 여운형이 조선 인민당을 결성하면서 사실상 해체되었다. 조선 인민당의 핵심 간부 상당수가 건국 동맹 출신이었다.[2]

광복 직전의 독립운동 단체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단체 결성 중심 인물 활동 지역
조선 건국 동맹 1944 여운형 국내(서울)
조선 독립 동맹 1942 김두봉 중국 옌안
대한민국 임시정부(한국 광복군) 1919(1940) 김구 중국 충칭
신민회 1907 안창호·양기탁 국내 비밀 결사
  1. ↑ 1.0 1.1 건국동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2.0 2.1 조선인민당과 근로인민당, 『신편 한국사』 52,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