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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사(朝天使)는 조선이 명나라에 보낸 사절과 그 사신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하정사·성절사·천추사 같은 정기 사절과 일이 있을 때마다 보낸 임시 사절이 있었다.

조선은 명과 조공·책봉 관계를 맺고 사대 외교를 폈다. 명에 보내는 사행은 천자의 조정(천조)에 나아가 뵙는다는 뜻에서 '조천'이라 했고, 사신들의 여행 기록도 『조천록』이라 불렀다. 병자호란 뒤 청에 보낸 사절은 오랑캐 왕조를 높이지 않으려고 북경의 옛 이름을 따 연행사라 불러 구별했다.[1] 1401년(태종 1) 명이 조선 국왕을 책봉하는 고명과 인신 문제가 풀리고 정기 사행이 1년 3사로 정해지면서 사대 외교 체제가 자리 잡았다.[2]

  • 하정사(정조사) - 정월 초하루에 새해를 축하하려고 보냈다.
  • 성절사 - 명 황제·황후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보냈다.
  • 천추사 - 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보냈다.
  • 동지사 - 동지 무렵에 보냈다.

『신편 한국사』는 조선 초기 정기 사행을 하정사·성절사·천추사의 '1년 3사'로 적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동지사까지 넣어 정기 사행을 넷으로 적는다.[2][1]

감사를 표하는 사은사, 특별한 청을 하는 주청사, 보고·해명할 일이 있을 때의 주문사, 새 황제 즉위 등을 축하하는 진하사, 황실의 상사에 보내는 진위사·진향사, 조선 국왕의 죽음을 알리는 고부사 등이 있었다. 태조부터 성종까지 임시 사절만 344차례로 한 해 평균 3.3회였으며, 정기 사절보다 오히려 자주 갔다.[2]

정사·부사·서장관과 통역을 맡은 통사, 군관·의원 등의 정관에 마부·노자 같은 종인을 더해 70명 안팎이었다. 정사와 부사는 대개 2품 이상의 문관이, 서장관은 주로 사헌부 감찰이 맡았다. 육로는 서울에서 평양·의주를 지나 압록강을 건너 요동·산해관을 거쳐 북경에 이르렀다.[2][1]

조선의 외교 사절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절 상대 시기
조천사(하정사·성절사·천추사 등) 명 조선 전기~명 멸망
연행사(동지사 등) 청 병자호란 뒤~1894
통신사 일본 막부 조선 전기, 1607~1811
회답겸쇄환사 일본 에도 막부 1607·1617·1624
  1. ↑ 1.0 1.1 1.2 조천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1-05 확인.
  2. ↑ 2.0 2.1 2.2 2.3 조선사절의 왕래, 『신편 한국사』 22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1-05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