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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宗廟)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조선과 대한 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나라의 사당으로, 1395년(태조 4) 경복궁의 왼쪽(동쪽)에 세워졌다.

종묘 정전

유교 국가는 도읍을 정하면 궁궐을 기준으로 왼쪽에 조상을 모시는 종묘, 오른쪽에 땅과 곡식의 신을 모시는 사직을 세웠다. 태조는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1394년 12월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9월 정전 7칸을 짓고 태조의 4대 조상(목조·익조·도조·환조)의 신주를 모셨다. 처음에는 정전만 있어 태묘라고도 불렀다.[1][2]

정전과 영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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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녕전 - 1421년(세종 3) 정전 서쪽에 따로 지은 별묘이다. 대수가 다한 왕의 신주는 영녕전으로 옮겨 모시고(조천), 공덕이 큰 왕은 대대로 정전에 모셨다(세실).
  • 모시는 수 - 정전에는 19칸에 왕 19위와 왕후 30위의 신주 49위를, 영녕전에는 16칸에 왕 15위·왕후 17위와 의민황태자(영친왕)의 신주를 모셨다.
  • 묘제 - 궁능유적본부는 조선이 제후국의 5묘제에 따라 신주를 모셨다고 설명하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고려와 조선 초에 7묘제를 따랐다고 적는다.
  • 건축 - 정전은 옆으로 길게 이어진 맞배지붕 건물로, 넓은 월대를 앞에 두었다. 정전 담장 안 동쪽에는 공신의 위패를 모신 공신당이 있다.[1]
  • 1546년(명종 1) 정전을 11칸으로 늘렸다.
  •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탔고, 1608년(광해군 즉위년) 다시 지었다.
  • 영조·헌종 때 증축해 1836년(헌종 2) 정전 19칸, 영녕전 16칸이 되었다.
  • 1995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고, 2001년 종묘 제례와 종묘 제례악이 인류 무형 유산이 되었다.[2]

2025년 환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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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은 목재 충해와 부재 파손 등이 확인되어 2020년부터 5년 동안 보수했다. 2021년 6월 신주 49위를 창덕궁 옛 선원전으로 옮겨 모셨다가(이안), 공사를 마친 2025년 4월 20일 다시 정전으로 모셔 오는 환안제를 열었다. 1870년(고종 7) 이후 155년 만에 치른 의례로, 헌종 때의 『종묘영녕전증수도감의궤』를 바탕으로 재현했으며 시민 행렬단도 함께했다.[3]

궁궐·제단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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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성격
종묘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
사직단 땅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하는 제단
경복궁 조선의 법궁, 향원정·경회루
규장각 (창덕궁 주합루) 정조 때 왕실 도서관
환구단 대한 제국 고종이 하늘에 제사하고 황제에 즉위한 제단, 황궁우
덕수궁 정관헌 대한 제국 때 지은 서양식 정자
  1. ↑ 1.0 1.1 종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
  2. ↑ 2.0 2.1 종묘 소개·역사, 궁능유적본부, 국가유산청, 2026-10-21 확인.
  3. ↑ 조선 왕들의 신주, 5년 보수 마친 국보 「종묘 정전」으로 돌아온다, 국가유산청 보도 자료, 2025-03-31,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