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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단(圜丘壇)은 1897년 고종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황제에 즉위하려고 서울 소공동에 쌓은 제단으로, 대한 제국이 자주독립한 황제국임을 드러내는 상징이었으며 지금은 신위를 모신 황궁우와 석고 등이 남아 있다.

20세기 초의 환구단 일대

하늘에 지내는 제사는 천자만 올릴 수 있다고 여겨, 고려 때 있던 원구(환구) 제사는 조선에 들어와 제후국의 왕이 지내기에 맞지 않는다는 논의 끝에 여러 차례 폐지되었다.[1] 아관 파천 뒤 경운궁(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1897년 황제 칭호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9월 환구단 제도를 정비하게 했으며 10월 1일 터를 남서 소공동으로 정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명 장수가 머문 뒤 중국 사신이 묵던 남별궁 자리여서,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운 것처럼 중국과의 관계를 끊는 뜻도 담겼다.[2]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서둘러 완성한 환구단에서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황제에 올랐다. 이튿날 국호를 대한 제국, 연호를 광무로 하는 조칙을 내리고 왕후와 왕세자를 황후와 황태자로 높였다.[2]

  • 환구단 - 화강암으로 둥글게 3단을 쌓고 맨 위에 원추형 지붕을 얹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생각에 따라 둥글게 쌓고, 안쪽 담은 둥글게 바깥 담은 네모나게 둘렀다. 1층에 황천상제와 황지기, 2층에 해와 달, 3층에 별·산천·바람·비 등의 신위를 모셨다.
  • 황궁우 - 환구단 북쪽에 세운 3층 팔각 건물로, 하늘신과 태조고황제 등의 신위판을 모셨다. 내부는 통층이고 천장에 발톱 일곱 개의 용을 새겼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899년 짓고 신위판을 봉안했다고 적고, 우리역사넷 연대기는 1898~1899년 지었으나 신위를 1908년에야 옮겨 왔다고 적는다.
  • 석고단 -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세웠다. 용무늬를 새긴 돌북 3개가 남아 있다.[1][2]

1911년 환구단의 건물과 땅은 조선 총독부 소관이 되었고, 1913년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조선 철도 호텔을 지었다(1914년 개관). 황궁우와 석고만 남았고, 호텔을 지으며 헐린 정문은 2009년 서울 광장 쪽에 다시 세웠다.[2] 196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3]

대한 제국의 상징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문화유산 성격
환구단·황궁우 고종이 하늘에 제사하고 황제에 즉위한 제단, 팔각 3층 황궁우
덕수궁 정관헌 대한 제국 때 지은 서양식 정자
덕수궁 석조전 대한 제국 때 지은 서양식 석조 건물
중명전 황실 도서관, 을사늑약 체결 장소
종묘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
강화 참성단 단군이 하늘에 제사했다고 전하는 제단
  1. ↑ 1.0 1.1 환구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
  2. ↑ 2.0 2.1 2.2 2.3 환구단,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3. ↑ 사적 환구단,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