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강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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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강 개시(中江開市)는 조선 시대 평안도 의주 건너편 압록강의 중강에서 열린 중국과의 공무역 시장으로, 임진왜란 중인 1593년 처음 열렸으며 이를 틈타 사무역인 중강 후시가 생겨났다.
1593년(선조 26) 전쟁으로 기근이 심해지자 영의정 류성룡이 요동에 자문을 보내 중강에 시장을 열게 했다. 굶주림을 덜고 군마를 마련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조선 안에서는 무명 1필로 겉곡식 1말도 못 바꿨지만 중강에서는 쌀 20여 말을 바꿀 수 있었고, 은·구리·무쇠로 거래한 사람은 10배 가까운 이익을 보았다.[1]
- 명과의 개시 - 밀무역과 기밀 누설 같은 폐단으로 1601년(선조 34) 혁파되었다가 이듬해 명의 요구로 다시 열렸고, 광해군 때 다시 없어졌다.
- 청과의 개시 - 1646년(인조 24) 청의 요구로 다시 열렸다. 처음에는 3월 15일과 9월 15일 두 차례로 정했다가 농번기라 하여 2월 15일과 8월 15일로 고쳤다. 서울·개성·황해도·평안도 상인이 참여했다.
- 거래 품목 - 조선은 소·소금·종이·다시마·해삼·면포·사기 등을 팔았고, 청 상인은 소와 소금을 가장 중시했다. 허가받지 않은 사상의 참여와 암말·인삼 거래는 금지했다.[2]
- 중강 후시 - 개시를 틈타 허가받지 않은 사상들이 따라가 자유롭게 거래한 사무역으로, 50여 년 동안 성행하다가 1700년(숙종 26) 혁파되었다.
- 책문 후시 - 사신 일행이 오가는 길목인 책문에서 벌어진 사무역으로, 영조 때 세금을 받고 공인되면서 대청 무역의 중심이 되었다.[1]
| 시장 | 상대 | 성격 |
|---|---|---|
| 중강 개시 | 명·청 | 국가가 관리한 공무역 |
| 중강 후시·책문 후시 | 청 | 사상의 사무역, 의주의 만상이 활약 |
| 왜관 개시·후시 | 일본 | 부산 왜관, 동래의 내상이 활약 (→ 왜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