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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평통보(常平通寶)는 1678년(숙종 4) 법화로 정해 주조한 조선 후기의 동전으로, 전국에 유통되어 1894년 주조가 멈출 때까지 조선의 대표 화폐로 쓰였다.

고려와 조선 전기에도 철전·동전·은병·저화 같은 화폐를 만들었으나 자리 잡지 못했다. 양 난 뒤 상공업이 자라고 대동법이 퍼지면서 쌀·베 같은 물품 화폐로는 거래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1] 인조 때인 1633년 물가 조절을 맡은 상평청을 두고 동전을 만들었으나 병자호란으로 주조가 멈추었다. 이때의 동전을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통보로 소개하고, 이를 상평통보의 첫 주조로 적는 자료도 있다.[2] 효종 때에도 동전 유통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 법화 채택 - 1678년 1월 영의정 허적 등의 건의로 호조·상평청·진휼청·어영청·사복시·훈련도감 등에 상평통보를 주조하게 하고, 은 1냥을 동전 400문으로 정해 4월부터 법정 통화로 썼다.[3]
  • 이름 - '상평'은 늘 고르게 한다는 상시평준(常時平準)에서 따왔다.
  • 확산 - 17세기 말 전국에 퍼졌고, 18세기 전반 이후 일반적인 교환·지불 수단이 되었다.
  • 주조 관리 - 여러 관청과 군영, 지방 관청이 따로 만들다가 1785년(정조 9) 호조가 주조를 전담했다. 순조 이후 다시 여러 곳에서 만들고 민간에 맡기기도 했다.
  • 전황 - 18세기 초부터 구리가 모자라고 지주·상인이 동전을 재산으로 쌓아 두어 시중에 돈이 부족해졌다. 이익은 화폐 사용을 반대하는 폐전론을 폈다.[3]

고액전과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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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 대원군은 1866년 경복궁 중건 비용을 마련하려고 상평통보 1문의 100배로 매긴 당백전을 만들었으나 실제 가치는 5~6배에 그쳐 물가가 크게 올랐다. 1883년에는 5배 액면의 당오전이 나왔다. 1894년 근대 화폐가 만들어지면서 상평통보 주조가 멈추었고, 대한 제국 시기 화폐 정리 사업 과정에서 거두어들여졌다.[2][1]

우리나라 옛 화폐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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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 때
건원중보(철전) 고려 성종(996)
해동통보·삼한통보·활구(은병) 고려 숙종 (→ 고려의 경제)
저화(종이돈) 고려 말·조선 초
상평통보 조선 숙종(1678)부터 전국 유통
당백전 흥선 대원군(1866)
  1. ↑ 1.0 1.1 상평통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2.0 2.1 상평통보,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국립중앙박물관, 2026-10-18 확인.
  3. ↑ 3.0 3.1 상평통보의 유통, 사료로 본 한국사,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숙종실록』 권7 숙종 4년 1월 23일),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