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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사건(進步黨事件, 1958~1959)은 이승만 정부가 1958년 진보당 위원장 조봉암과 간부들을 국가 보안법 위반과 간첩 혐의로 체포해 진보당을 해산시키고, 1959년 7월 조봉암을 사형에 처한 정치 탄압 사건이다.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조봉암이 216만여 표를 얻자,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은 그를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로 여겼다. 조봉암이 1957년 창당한 진보당은 '평화 통일'을 내세워 정부의 북진 통일론과 맞섰다. 1958년 5월 총선거를 앞둔 1월, 서울시 경찰국은 진보당의 평화 통일론이 북한의 주장에 호응하는 것이라며 조규희·윤길중 등 간부를 체포했고 이어 조봉암도 잡아들였다.[1]

  • 간첩 혐의 추가 - 2월 육군 특무대가 남북 교역상 양이섭을 통해 북한 공작금을 받았다는 간첩 혐의를 덧붙였다(양이섭 사건). 같은 달 정부는 진보당의 등록을 취소했다.
  • 1심(1958년 7월) - 조봉암과 양이섭에게 국가 보안법 위반만 인정해 징역 5년을, 다른 간부들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평화 통일론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공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 뒤 반공 청년을 자처한 무리가 법원에 난입했다.
  • 2심(1958년 10월) - 양이섭이 특무대의 협박에 따른 거짓 자백이었다고 진술을 뒤집었으나 재판부는 이를 무시하고 조봉암과 양이섭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 3심(1959년 2월 27일) - 대법원이 두 사람의 사형을 확정하고 진보당 간부 대부분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평화 통일론 등 진보당 강령에 대한 공소는 끝내 모두 무죄였다.
  • 사형 집행 - 재심 청구가 1959년 7월 30일 기각되었고, 이튿날인 7월 31일 조봉암의 사형이 집행되었다.[2]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이 사건을 민간인 수사권이 없는 특무대가 주도한 정치 탄압으로 판단하고 재심을 권고했다. 2011년 1월 20일 대법원 전원 합의체는 재심에서 조봉암의 간첩과 국가 변란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1. ↑ 진보당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최종판결, 제3심 공판, 기록으로 보는 진보당사건, 국가기록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