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진포 대첩(鎭浦大捷, 1380)은 1380년(우왕 6) 나세·심덕부·최무선이 이끈 고려 수군이 금강 어귀 진포에 들어온 왜선 500여 척을 화포로 불태운 싸움이다.

1380년 왜구가 배 500여 척을 이끌고 진포(지금의 충청남도 서천과 전라북도 군산 사이 금강 하구) 어귀에 들어왔다. 왜구는 배들을 큰 밧줄로 서로 묶어 두고 일부 군사에게 지키게 한 뒤, 해안에 올라 여러 고을로 흩어져 불을 지르고 노략질했다. 실어 가려던 곡식이 땅에 한 자 높이로 쏟아질 만큼 피해가 컸다.[1]

  • 화포 공격 - 원수 나세와 심덕부, 화통도감에서 화약 무기를 만든 최무선이 진포에 이르러, 최무선이 처음 만든 화포로 묶여 있던 왜선을 불태웠다. 왜구는 대부분 불에 타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
  • 포로의 탈출 - 왜구는 붙잡아 온 백성을 죽였으나 330여 명이 빠져나와 돌아왔다.
  • 포상 - 우왕은 돌아온 나세·최무선·심덕부에게 금 50냥씩을 내렸다.
  • 내륙의 왜구 - 배를 잃은 왜구는 옥주(옥천)로 달아나 육지의 무리와 합쳐 상주·선주·함양 등을 휩쓸었고, 남원 운봉 일대에 진을 쳤다. 이들을 같은 해 이성계가 남원 황산에서 섬멸했다(황산 대첩).[2]

화약 무기를 바다 싸움에 본격적으로 쓴 첫 사례로 꼽힌다. 화포를 갖춘 수군의 힘은 1383년 정지의 관음포 대첩으로 이어졌고, 1389년 박위의 쓰시마 정벌로 왜구의 근거지를 치는 데까지 나아갔다.

왜구 격퇴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싸움 때 지휘
홍산 대첩 1376 최영
진포 대첩 1380 나세·심덕부·최무선, 화포 사용
황산 대첩 1380 이성계
관음포 대첩 1383 정지
쓰시마 정벌 1389 박위
  1. ↑ 『고려사절요』 권31, 우왕 6년(1380),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2026-10-18 확인.
  2. ↑ 최무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