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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崔茂宣, 1326~1395)은 고려 말의 무관이자 화약 무기 개발자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화약을 만들고 화통도감을 두게 해 여러 화기를 제작했으며, 1380년 진포에서 화포로 왜선을 불태웠다.

본관은 영주(永州)이며 광흥창사 최동순의 아들이다. 『태조실록』의 졸기는 그가 타고난 재주가 뛰어나고 꾀가 많았으며 병법 이야기를 즐겼다고 적었다. 14세기 후반 왜구의 노략질이 극심해지자 그는 왜구를 막는 데 화약만 한 것이 없지만 나라 안에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보고 스스로 방법을 찾았다.[1]

  • 염초 기술 - 화약의 세 재료 가운데 유황과 숯은 구하기 쉬웠으나 흙에서 염초(초석)를 뽑는 기술이 어려웠다. 실록은 그가 중국 강남에서 온 상인에게 묻고 다니다가 조금 안다는 사람을 집에 수십 일 머물게 하며 배웠다고 적었다.[1] 백과사전은 그 사람을 벽란도에서 만난 강남 출신 이원(李元)이라 전한다.[2]
  • 화통도감 - 여러 해 건의한 끝에 1377년(우왕 3) 10월 화통도감이 설치되었다. 실록은 이를 '화약국'이라 하고 최무선이 제조(책임자)를 맡았다고 적었다.
  • 화기 - 대장군·이장군·삼장군·화포·신포·화통 같은 총포, 화전·철령전·피령전 같은 발사물, 질려포·철탄자와 로켓 무기 주화 등을 만들었다. 백과사전은 모두 18가지로 꼽는다.[2]

1380년(우왕 6) 왜구가 금강 어귀 진포에 몰려오자 원수 나세·심덕부와 함께 부원수로 나가 화포를 실은 전함으로 왜선을 불태웠다(→ 진포 대첩). 배를 잃고 내륙으로 흩어진 왜구는 그해 이성계가 운봉 황산에서 섬멸했다. 왜선의 수를 『고려사』 계통의 기록과 백과사전은 500여 척으로, 『태조실록』 졸기는 300여 척으로 적는다.

고려에서 문하부사에 이르렀고, 조선이 선 뒤에는 나이가 많아 실직을 맡지 않고 검교 참찬문하부사가 되었다. 죽기 전 화약 만드는 법을 적은 책을 아내에게 주어 아들에게 전하게 했다. 아들 최해산은 이 책으로 화약 기술을 익혀 조선 초 군기감에서 화약 무기 개발을 이었다. 최무선이 남긴 『화약수련법』은 전하지 않는다. 1401년(태종 1) 의정부 우정승·영성 부원군으로 추증되었다.[1]

왜구를 물리친 인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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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물
화통도감 설치 건의, 진포에서 화포로 왜선 격파 최무선
홍산에서 왜구 격파(1376) 최영
운봉 황산에서 왜구 격파(1380) 이성계
남해 관음포에서 왜선 격파(1383) 정지
쓰시마 정벌(1389) 박위 (→ 대마도 정벌)
  1. ↑ 1.0 1.1 1.2 『태조실록』 권7, 태조 4년(1395) 4월 19일, 검교 참찬문하부사 최무선의 졸기,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2. ↑ 2.0 2.1 최무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