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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통도감(火㷁都監)은 1377년(우왕 3) 최무선의 건의로 설치되어 화약과 화약 무기를 만든 고려 말의 임시 관청이다.

14세기 후반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지자, 무관 최무선은 왜구를 물리치는 데 화약만 한 것이 없다고 보았다. 화약의 세 재료인 염초(초석)·유황·숯 가운데 유황과 숯은 구하기 쉬웠으나 흙에서 염초를 뽑아내는 기술은 중국이 감추고 있었다. 최무선은 원의 염초 기술자 이원을 후하게 대접해 그 방법을 배우고, 하인들에게 익히게 해 시험한 뒤 조정에 여러 차례 건의했다. 『고려사절요』는 이원이 최무선과 같은 마을에 살았다고 적었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최무선」 항목은 벽란도에서 강남에서 온 이원을 만났다고 전한다. 마침내 1377년 10월 화통도감이 설치되었다.[1]

화통도감에서는 대장군·이장군·삼장군·육화석포·화포·신포·화통 같은 총포, 화전·철령전·피령전 같은 발사물, 질려포·철탄자·유화·촉천화와 로켓 무기인 주화 등을 만들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최무선」 항목은 이를 18가지로, 「화통도감」 항목은 20여 종으로 적었다.[2] 화포를 실을 수 있는 전함도 만들었다.

  • 진포 대첩(1380) - 왜선 500여 척이 금강 어귀 진포에 들어오자 나세·심덕부·최무선이 화포로 배를 모두 불태웠다.
  • 관음포 대첩(1383) - 정지가 남해 관음포에서 화포로 왜선을 격파했다.
  • 폐지 - 1388년(창왕 즉위년) 조준의 건의로 폐지되고 그 일은 군기시로 넘어갔다. 최무선은 『화약수련법』을 남겼으나 전하지 않으며, 아들 최해산이 조선 초 군기감에서 화약 무기 개발을 이었다.
  1. ↑ 『고려사절요』 권30, 우왕 3년(1377) 10월,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2026-10-18 확인.
  2. ↑ 화통도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