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가요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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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가요의 역사는 1920년대 유성기 음반과 함께 시작된 유행가가 일제 강점기의 트로트·신민요, 광복과 6.25 전쟁기의 노래, 1960년대 스탠더드 팝, 1970년대 포크, 1980년대 발라드로 이어지며 시대의 정서를 담아 온 흐름을 이른다.

- 트로트와 신민요 - 일본 대중가요의 음계를 받아들인 트로트(당시 '유행가')와, 민요 가락에 서양 음악을 섞은 신민요가 두 축을 이루었다. 트로트는 이애리수의 「황성 옛터」(1932), 고복수의 「타향(타향살이)」(1934)을 거쳐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1935)에서 틀이 잡혔다. 이룰 수 없는 사랑과 고향을 떠난 나그네의 설움을 진지하게 노래했다.
- 매체 - 라디오의 영향은 아직 작았고, 음반과 악극단 공연이 중심이었다. 음반 회사는 모두 일본 회사였고 조선에는 녹음 스튜디오조차 없었다.
- 전시 체제 - 1940년대에는 '대동아 공영권'을 노래하는 이국풍 노래와 노골적인 친일 가요가 늘었다.[1]
- 스탠더드 팝과 트로트의 부활 - 1961년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계기로 미국풍 스탠더드 팝이 주류가 되었다. 1960년대 중반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로 트로트가 되살아났으나, 뒤에 '왜색'을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1961년 KBS 텔레비전 개국을 시작으로 텔레비전이 새 매체가 되었다.
- 포크와 청년 문화 - 1970년대 초 대학생 중심의 포크송이 통기타를 들고 등장했다. 김민기가 짓고 양희은이 부른 「아침 이슬」(1971)은 대표적인 비판적 포크로 꼽힌다.[1]
- 금지곡 - 1975년 정부는 「공연 활동의 정화 대책」을 발표하고 그때까지 나온 대중가요를 다시 심의해 많은 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왜색·퇴폐·불건전·방송 부적 같은 이유가 붙었고, 「아침 이슬」도 방송 금지곡이 되었다. 같은 해 대마초 사건으로 많은 가수가 활동을 금지당했다. 금지곡은 6월 민주 항쟁 뒤인 1987년 8월부터 대거 풀렸다.[2]
| 노래 | 가수 | 시기 |
|---|---|---|
| 사의 찬미 | 윤심덕 | 1926 (일제 강점기) |
| 황성 옛터 | 이애리수 | 1932 (일제 강점기) |
| 목포의 눈물 | 이난영 | 1935 (일제 강점기) |
| 굳세어라 금순아 | 현인 | 6.25 전쟁 뒤 |
| 단장의 미아리 고개 | 이해연 | 6.25 전쟁 뒤 |
| 동백 아가씨 | 이미자 | 1960년대 |
| 아침 이슬 | 김민기 작사·작곡, 양희은 노래 | 1970년대 |
| 손에 손 잡고 | 코리아나 | 1988 (서울 올림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