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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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심덕(尹心悳, 1897~1926)은 일제 강점기의 성악가로, 서양 성악을 정식으로 배운 첫 세대 소프라노로 이름을 떨쳤고 1926년 「사의 찬미」를 녹음한 직후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다.

- 성악가 - 풍부한 성량과 당당한 무대 매너로 서울의 음악회마다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정통 성악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 어려워 음악 교사로 일하며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가벼운 세미클래식을 부르기도 했다.
- 배우 - 신극 단체 토월회에 들어가 무대에 섰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2]
- 음반 녹음 - 1926년 여름 일본에 건너가 오사카의 닛토(日東) 레코드에서 음반을 녹음했다. 녹음한 곡 수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윤심덕' 항목이 24곡, 같은 사전의 '사의 찬미' 항목이 처음 계획한 10곡에 「사의 찬미」를 더한 것으로,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이 11곡으로 전해 서로 다르다. 이때 남긴 「사의 찬미」가 그의 대표곡이 되었다.[2][1]
1926년 8월 3일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오는 관부 연락선에 김우진과 함께 탔다가 가명으로 유서를 남기고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김우진은 아내와 자식이 있는 몸이었고, 두 사람의 사랑은 당시 사회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 사건이 크게 보도되면서 허무와 염세를 노래한 「사의 찬미」 음반이 날개 돋친 듯 팔렸고, 한국에서 유성기 음반과 유행가가 대중에게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