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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書院)은 조선 중기 이후 사림이 학문을 연구하고 선현의 제사를 지내려고 지방에 세운 사설 교육 기관이자 향촌 사림의 결집 장소로, 1543년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에서 시작되었다.

영주 소수 서원의 학구재

서원은 앞선 학자를 모시는 사당과 유생이 공부하는 강당·기숙사(동재·서재)로 이루어졌다. 관학인 향교가 국가가 지방 군현마다 세운 학교였다면, 서원은 사림이 스스로 세운 사학이었다. 사림은 서원을 근거로 향촌에서 영향력을 넓혔고, 서원에서 맺은 학연은 붕당의 바탕이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서원이 지나치게 늘어나 면세·면역의 특권을 누리며 폐단을 낳았고, 결국 흥선 대원군이 대부분을 없앴다.[1]

  • 백운동 서원(1543) - 풍기 군수 주세붕이 1541년 이 고장 출신인 고려 말 학자 안향의 사당을 세우고, 1543년(중종 38) 유생 교육 기능을 더해 경상도 순흥(지금의 영주)에 세운 최초의 서원이다.
  • 소수 서원(1550) - 풍기 군수로 온 이황이 백운동 서원에 국가의 인정을 청해, 명종이 '소수서원'이라는 편액과 서적·토지·노비를 내렸다. 최초의 사액 서원이다. 사액 서원은 면세·면역 혜택을 받았다.
  • 이황의 보급 - 이황은 서원의 학규를 정하고 여러 서원 건립에 관여해 서원이 퍼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명종 때 18곳이던 서원은 숙종 때 크게 늘어 전국에 수백 곳이 되었다.
  • 강학 - 성리학을 공부하고 유생을 가르쳤다.
  • 제향 - 사당에서 그 지역 출신이나 학파의 선현에게 제사를 지냈다.
  • 향촌 결집 - 사림이 모여 여론을 모으고 향약 시행 등 향촌 교화를 이끌었다.
  • 조선 후기 붕당 정치가 변질되면서 같은 인물을 모신 서원이 겹쳐 세워지고, 서원이 토지와 노비를 늘리며 군역을 피하는 곳이 되었다.
  • 영조는 1741년 서원을 대거 정리했다.
  • 흥선 대원군은 1871년 47곳만 남기고 나머지 서원을 철폐했다. 송시열을 모신 화양동 서원과 그 안의 만동묘도 이 무렵 정리되었다(만동묘는 1865년 철폐).

비슷한 기관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기관 성격
서원 사림이 세운 사학, 선현 제사와 강학
향교 국가가 군현마다 세운 지방 관학
성균관 서울의 최고 관학
서당 마을의 초급 사설 교육 기관
향약 향촌 교화를 위한 자치 규약(조광조가 처음 시행 시도, 이황의 예안 향약, 이이의 서원 향약·해주 향약)
  1. ↑ 서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