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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촌 전투(黃龍村戰鬪, 1894)는 1894년 음력 4월 23일 전라도 장성 황룡촌(황룡강 일대)에서 동학 농민군이 초토사 홍계훈이 보낸 정부 경군(서울 군대)을 물리친 싸움으로,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는 길을 열었다. 장성 전투라고도 한다.

장성 황룡 전적

4월 7일 농민군이 황토현에서 전라 감영군을 무찌르자, 정부는 홍계훈을 양호 초토사로 삼아 서울의 경군을 내려보냈다. 홍계훈이 전주에 머무는 사이 농민군은 정읍·고창·무장·영광·함평으로 남쪽을 돌며 세력을 넓혔고, 장성 월평촌에 진을 쳤다. 홍계훈은 이틀 뒤인 4월 23일 장성에 이르러 대관 이학승·원세록·오건영에게 농민군을 살피게 했다.[1]

  • 경군의 선제 포격 - 이학승이 이끈 별동대가 농민군에게 기습 포격을 퍼부어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다.[2]
  • 장태 - 농민군은 닭장을 엮는 방식으로 대나무를 둥글게 엮어 짚을 채운 장태를 언덕 위에서 굴려 내려보내며 그 뒤에 붙어 공격했다. 『오하기문』은 바퀴 둘을 단 대나무 통에 창칼을 꽂아 총탄과 화살이 모두 막혔다고 적었다. 경군은 쿠르프식 야포, 회전식 기관총, 모제르 소총 같은 신식 무기를 갖추었으나 무너졌다.[1]
  • 결과 - 영광 쪽으로 물러나던 경군은 신촌리 뒷산에서 마지막으로 맞섰고, 대관 이학승이 전사했다. 농민군은 대포와 기관포, 양총 여러 자루를 빼앗았다.

농민군이 정식 훈련을 받은 중앙 군대와 처음 맞붙어 이긴 싸움이었다. 왕이 보낸 군대와 싸우기를 꺼리던 농민군은 이 승리로 자신감을 얻었다. 농민군은 4월 24일 장성을 떠나 정읍·태인·원평을 거쳐 4월 27일 전주성에 들어갔고, 이 일은 청·일 군대의 출병과 전주 화약으로 이어졌다.[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싸움을 양력 날짜(5월 27일)로 적는다.[2] 싸움터는 사적 '장성 황룡 전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1차 봉기의 두 승전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구분 황토현 전투 황룡촌 전투
때(음력) 1894년 4월 7일 1894년 4월 23일
곳 고부 황토재 장성 황룡촌(황룡강)
상대 전라 감영군(무남영병과 보부상 향병) 홍계훈이 보낸 서울 경군
결과 감영군 영관 이경호 전사 경군 대관 이학승 전사, 전주성 점령으로 이어짐

2차 봉기 때 농민군이 크게 진 싸움은 우금치 전투이다.

  1. ↑ 1.0 1.1 1.2 (4) 장성전투, 『신편 한국사』 39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2. ↑ 2.0 2.1 동학운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