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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화약(全州和約, 1894)은 1894년 음력 5월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 농민군과 정부군이 폐정 개혁을 조건으로 맺은 화약으로, 농민군은 전주성에서 물러나고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를 두어 개혁을 추진했다.

동학 농민 운동의 1차 봉기에서 황토현과 장성 황룡촌 싸움에 이긴 농민군은 음력 4월 27일 전주성에 들어갔다. 정부가 청에 군대를 청하자 5월 초 청군이 아산만에, 일본군이 제물포에 상륙했다. 외국 군대가 들어오고 전주성 밖 관군과의 싸움에서 피해도 커지자, 전봉준은 폐정 개혁안을 받아들이면 해산하겠다는 강화안을 초토사 홍계훈에게 냈다. 조정이 이를 받아들이라고 지시하면서 화약이 이루어졌고, 농민군은 홍계훈이 내준 신변 보장 증표를 받고 5월 8일 전주성을 비우고 물러났다. 『신편 한국사』는 정부가 농민군이 올린 27개조 폐정 개혁안을 아뢰어 시행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정리한다.[1]

화약이 맺어진 날은 자료마다 다르다. 『신편 한국사』와 우리역사넷 교과서 용어해설은 음력 5월 7일로 적고,[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농민군이 철수한 날과 같은 음력 5월 8일(양력 6월 11일)에 화약이 성립했다고 적는다.[3]

화약 뒤의 변화

편집 원본 편집
  • 집강소 - 전라도 각 고을에 농민 자치 기구인 집강소를 두고, 전주에 대도소를 두어 폐정 개혁을 실시했다. 신임 전라 감사 김학진이 이를 인정했다.
  • 교정청 - 정부도 교정청을 두어 스스로 개혁하려 했다.
  • 청일 전쟁 - 농민군이 물러났는데도 청·일 두 나라는 군대를 빼지 않았고,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한 뒤 청일 전쟁이 일어나 농민군의 2차 봉기로 이어졌다.
  1. ↑ (3) 전주화약, 『신편 한국사』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18 확인.
  2. ↑ 전주 화약, 교과서 용어해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2026-10-18 확인.
  3. ↑ 동학운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