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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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치 전투(牛金峙戰鬪, 1894)는 1894년 음력 11월 충청도 공주 우금치에서 남접과 북접이 연합한 동학 농민군이 관군·일본군 연합 부대와 싸워 크게 패한 전투로, 2차 봉기가 무너진 결정적 싸움이다.
- 1차 접전(10월 23~25일) - 농민군은 경천을 거쳐 이인과 효포 방면에서 공주를 공격했다. 웅치(곰티) 일대에서 공방이 벌어졌으나, 대부분 죽창으로 무장한 농민군은 신식 화력을 갖춘 관군과 일본군을 넘지 못하고 노성·논산 쪽으로 물러났다.[2]
- 우금치 결전(11월 8~11일) - 농민군은 이인에서 우금치를 넘어 공주로 들어가는 길을 주공격로로 삼았다. 일본군 대위 모리야(森尾雅一)가 지휘한 일본군과 경리청·통위영 병력은 우금치 고개와 주변 봉우리에 진을 쳤다. 9일 오전 10시 무렵 농민군이 고개를 향해 거듭 돌격했으나, 높은 곳을 지킨 관군과 일본군의 대포와 소총 사격에 막혀 오후까지 공격을 되풀이하다 무너졌다.[2][1]
- 피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만여 명이던 농민군이 두 차례 접전 뒤 3천여 명, 다시 두 차례 접전 뒤 500여 명만 남았다고 전한다.[2] 농민군 규모는 『전봉준 공초』가 1만여 명, 관군 측 기록이 4만여 명, 일본군 측이 2만여 명으로 저마다 다르게 적었다.[1]
농민군은 11일 노성·논산으로 물러났다. 전봉준은 이때 조선 사람끼리 싸우지 말고 함께 일본을 물리치자는 격문을 관군과 백성에게 띄웠다.[2] 이후 논산·원평·태인에서 잇달아 패해 농민군은 흩어졌고, 전봉준은 순창으로 숨었다가 12월 붙잡혀 1895년 처형되었다. 공주 우금치에는 전적지와 농민군 위령탑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