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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감은사지(慶州 感恩寺址)는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동해 가에 있는 통일 신라의 절터로, 문무왕이 부처의 힘으로 왜를 막으려고 짓기 시작하고 아들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한 감은사가 있던 곳이다.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 석탑

『삼국유사』 만파식적 조에 따르면 신문왕은 즉위한 뒤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동해 가에 감은사를 세웠다. 절에 전하는 기록에는 문무왕이 왜병을 누르려고 이 절을 짓다가 마치지 못하고 죽어 바다의 용이 되었고, 신문왕이 개요 2년(682)에 마쳤다고 했다. 금당 섬돌 아래에 동쪽을 향한 구멍을 하나 뚫어 용이 들어와 서릴 수 있게 했다. 문무왕의 유골을 모신 곳을 대왕암, 절을 감은사(은혜에 감사하는 절), 뒤에 용이 나타난 것을 본 곳을 이견대라 불렀다.[1]

  • 쌍탑 가람 - 중문·금당·강당이 남북으로 놓이고 금당 앞 동서에 탑 두 기를 세운 쌍탑 일금당 배치로, 이후 통일 신라 절의 본보기가 되었다.
  • 금당 아래 공간 - 1959년 발굴 때 금당 바닥 아래에서 장대석을 마루처럼 깔아 만든 약 60cm 높이의 빈 공간이 확인되어, 용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게 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맞아떨어졌다.
  • 감은사지 동·서 삼층 석탑 -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2단 기단 위에 3층 몸돌을 올린 통일 신라 초기 석탑의 전형으로, 세운 때가 분명해 석탑 연구의 기준이 된다. 1961년 서탑, 1995년 동탑을 해체·수리할 때 사리 장엄구가 나왔다.[2]

대왕암과 만파식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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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에서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바다의 바위섬이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장사 지냈다고 전하는 대왕암(문무대왕릉)이다. 『삼국유사』는 신문왕이 이견대에서 용에게 대나무를 얻어 피리를 만들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낫는다 하여 만파식적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를 전한다.[1]

통일 신라 초기의 왕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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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관련 사찰·사업
선덕 여왕 황룡사 구층 목탑, 분황사, 첨성대 (→ 황룡사 구층 목탑)
문무왕 감은사 착공, 부석사 창건 명령, 외사정 설치 (→ 외사정)
신문왕 감은사 완성(682), 국학 설립, 녹읍 폐지
경덕왕 불국사·석굴암 창건 (→ 석굴암)
  1. ↑ 1.0 1.1 『삼국유사』 권2 기이 만파식적, 신문왕이 즉위하여 감은사를 세우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2. ↑ 경주 감은사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