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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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文武王, ?~681, 재위 661~681)은 신라의 제30대 왕으로, 백제 부흥 운동을 누르고 668년 당과 함께 고구려를 무너뜨린 뒤 나당 전쟁에서 당군을 몰아내 676년 삼국 통일을 마무리했다.
- 백제 부흥 운동 진압 - 즉위한 661년부터 옹산성 등 부흥군의 성을 쳤고, 663년 당의 손인사 군과 함께 주류성을 함락했다. 이어 임존성까지 무너뜨려 부흥 운동을 끝냈다(→ 백제 부흥 운동). 665년에는 당이 웅진도독으로 세운 부여융과 맹약을 맺었다.
- 고구려 멸망(668) - 연개소문이 죽은 뒤 고구려 지배층이 갈라지자, 김유신·김인문 등을 보내 당군과 함께 평양성을 쳐서 보장왕의 항복을 받았다.
- 고구려 부흥 세력 지원 - 670년 검모잠을 죽이고 4천 호를 이끌고 내려온 안승을 금마저(지금의 익산)에 살게 하고 고구려왕으로, 674년에는 보덕왕으로 봉했다. 당과 싸우는 데 고구려 유민을 끌어들이려는 뜻이었다.
- 나당 전쟁(670~676) - 당이 옛 백제·고구려 땅에 이어 신라까지 넘보자 맞서 싸웠다. 671년 사비성을 차지해 소부리주를 두었고, 675년 매소성에서 이근행의 20만 대군을, 676년 기벌포에서 설인귀의 수군을 무찔렀다. 당은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옮겼고, 신라는 대동강에서 원산만 이남을 차지했다(→ 나당 전쟁).
- 통치 기반 - 늘어난 영토를 다스리려 5소경 제도와 9서당의 바탕을 마련했다. 672년 백제 유민으로 백금서당을 만들었다(→ 9서당 10정). 673년에는 주에 2명, 군에 1명씩 지방관을 감찰하는 외사정을 두었다.
- 의상과 부석사 - 676년 의상에게 명해 부석사를 세우게 했다. 서울에 성을 새로 쌓으려 하다가 의상의 간언을 듣고 그만두었다.
- 죽음과 대왕암 - 681년 7월 1일 죽었다. 유언에 따라 화장해 동해 어귀의 큰 바위에 장사 지냈고, 세상에서는 왕이 용이 되었다고 하여 그 바위를 대왕석(대왕암)이라 불렀다. 유조에서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었다"고 통일 전쟁을 마무리한 뜻을 밝혔다.[3] 아들 신문왕이 682년 감은사를 완성했다(→ 경주 감은사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