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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구층 목탑(皇龍寺 九層木塔)은 선덕 여왕 때인 645년 승려 자장의 건의로 경주 황룡사에 세운 9층 나무 탑으로, 이웃 나라의 침략을 부처의 힘으로 막으려는 뜻을 담았으며 1238년 몽골의 침입 때 불타 지금은 터만 남았다.

경주 황룡사 터. 앞쪽에 구층 목탑의 주춧돌이 남아 있다

『삼국사기』는 선덕왕 14년(645) 3월 황룡사탑을 처음 세웠는데 자장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적었다.[1] 자장은 636년 당에 들어가 불법을 배우고 643년 돌아왔다. 『삼국유사』 황룡사구층탑 조는 자장이 당에서 만난 신인(神人)에게서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가 항복하고 나라가 태평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한다. 선덕 여왕은 신하들과 의논해 백제의 장인 아비지를 불러 기술을 맡기고, 김춘추의 아버지 용춘에게 장인 200명을 거느리고 공사를 감독하게 했다.[2]

  • 규모 - 643년에 짓기 시작해 645년에 완성했다. 찰주기의 기록에 따르면 상륜부 42척, 탑신부 183척으로 모두 225척(약 80m)에 이르는 큰 탑이었다.
  • 9층의 뜻 - 『삼국유사』에 인용된 안홍의 『동도성립기』는 1층부터 9층까지 일본·중화·오월·탁라·응유·말갈·단국·여적·예맥을 하나씩 눌러 이웃 나라의 침략을 막으려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다만 이 책이 언제 쓰였는지 논란이 있어, 선덕 여왕 때 이미 이런 생각이 있었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1]
  • 신라 삼보 - 황룡사 장륙존상, 진평왕의 천사옥대와 함께 신라의 세 보물로 꼽혔다.

벼락과 지진으로 여러 차례 손상되어 신라와 고려에 걸쳐 고쳐 지었다. 경문왕 때인 872년에는 기울어진 탑을 헐고 다시 세우며 사리 장엄구와 찰주본기를 넣었다. 1238년(고종 25) 몽골군이 경주까지 쳐들어와 황룡사 전체가 불탈 때 함께 사라졌다(→ 고려 몽골 전쟁). 지금은 64개의 주춧돌과 심초석만 남아 있다.[2]

신라의 불교 건축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건축 왕 내용
흥륜사 법흥왕·진흥왕 불교 공인 뒤 처음 지은 큰 절 (→ 법흥왕)
황룡사 진흥왕 553년 짓기 시작한 신라 최대의 절 (→ 진흥왕)
황룡사 구층 목탑 선덕 여왕 자장의 건의, 백제 장인 아비지
분황사, 첨성대 선덕 여왕 (→ 선덕 여왕)
감은사 문무왕·신문왕 왜를 막으려 짓기 시작해 682년 완성 (→ 경주 감은사지)
  1. ↑ 1.0 1.1 『삼국사기』 권5 신라본기 선덕왕 14년 3월, 황룡사탑을 창건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21 확인.
  2. ↑ 2.0 2.1 황룡사 구층목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21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