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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군사 제도는 중앙군인 2군 6위와 지방군인 주현군·주진군을 바탕으로, 필요할 때 광군·별무반·삼별초 같은 특수 부대를 더해 운영한 고려 시대의 군사 조직이다.

고려는 건국 초 호족들의 사병을 점차 국가의 군대로 묶어 나갔다. 성종·목종 무렵 중앙군인 6위가 먼저 갖추어지고, 현종 무렵 국왕을 가까이에서 지키는 2군이 더해져 2군 6위가 완성되었다. 각 부대의 지휘관인 상장군·대장군은 합좌 기구인 중방에 모여 군사 문제를 의논했으며, 무신 정변 이후 중방은 무신 정권 초기의 최고 권력 기구가 되었다.[1]

중앙군: 2군 6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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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군 - 응양군과 용호군으로 이루어진 국왕의 친위 부대이다. 6위보다 늦게 만들어졌지만 서열은 더 높았고, 응양군의 상장군이 무반의 우두머리(반주)였다. 모두 3영, 약 3,000명이었다.
  • 6위 - 좌우위·신호위·흥위위(수도 방어와 국경 방어의 주력), 금오위(경찰), 천우위(의장), 감문위(궁성과 도성 문 수비)로 나뉘었다. 모두 42영, 약 4만 2,000명이었다.
  • 군반씨족 - 중앙군은 군적에 따로 올린 직업 군인으로, 역을 대대로 물려받고 그 대가로 군인전을 받았다. 부족한 인원은 농민 가운데 뽑아 채웠다.
  • 주현군 - 일반 행정 구역인 5도에 둔 군대로, 평소에는 농사를 짓다가 일이 생기면 동원되었고 노동 부대 성격도 띠었다.
  • 주진군 - 국경 지대인 양계(북계·동계)에 둔 상비군으로, 거란·여진과 맞닿은 국경을 지켰다.
  • 광군 - 947년(정종 2) 거란의 침입에 대비해 30만 명 규모로 조직하고 광군사를 두어 관리했다.
  • 별무반 - 1104년(숙종 9) 윤관의 건의로 여진을 치려고 만든 부대이다. 기병인 신기군, 보병인 신보군, 승려로 꾸린 항마군으로 이루어졌고, 1107년 여진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았다.
  • 삼별초 - 최씨 무신 정권 때 만든 좌별초·우별초·신의군으로, 몽골과의 전쟁에서 활약하고 개경 환도에 반대해 항쟁했다(→ 삼별초).
  • 연호군 - 고려 말 왜구를 막으려고 양인과 노비를 함께 묶어 만든 지방군이다.

다른 시대의 군사 조직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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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조직
응양군·용호군으로 이루어진 국왕 친위 부대 고려의 2군
좌별초·우별초·신의군으로 조직됨 삼별초
신기군·신보군·항마군으로 여진 정벌 별무반
9서당(중앙)과 10정(지방) 통일 신라 (→ 신라)
중앙의 5위, 병마절도사·수군절도사가 이끄는 지방의 병영·수영 조선 전기
포수·살수·사수의 삼수병, 급료를 받는 상비군 훈련도감(조선 후기)
  1. ↑ 이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